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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13. 2022

속세의 맛

글럼프(글+슬럼프)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면 귀찮은 마음이 앞선다.

대체 얼마나 썼다고 글럼프인가 싶지만 그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려니 한다.




휴직하고 두 달이 흘렀다.

3월은 적응 기간이었다.   

살림도, 육아도 몸에 배지 않은 생활을 해내려니 조금 힘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이 필요한 만큼 나도 전업 엄마로서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4월에 갑자기 맹장염 수술을 하면서 4월의 절반이 날아간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선 부리나케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5월 중순이 되었다.

큰 아이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입을 바지가 마땅치 않다. 두꺼운 츄리닝 바지를 입기엔 덥고, 칠부 츄리닝 바지는 아직 싫다고 한다. 얇으면서 긴 츄리닝 바지가 필요하다.


나 역시 옷장에 티셔츠가 가득 찼지만 실상 목이 늘어나거나 구멍이 난 티가 대부분이다.

(건조기를 써서 그런지 티셔츠에 구멍이 잘 난다.)

 

그러고 보니 쇼핑을 해본 지가 언제인가?  

내가 되도 않는 브런치 글을 쓰겠다고 휴직 기간 내내 집에만 있었네!

휴직을 하면 평일 대낮의 한산한 쇼핑몰과 카페 등을 즐길 거라고 생각했건만 실상은 집에만 꼭 붙어 있었다.

어차피 글 쓸 주제도 생각나지 않고 글럼프니 쇼핑을 하러 가기로 한다.


쇼핑 장소는 만 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웃렛 쇼핑몰이다.

아이의 츄리닝 바지 두 개와 내 티셔츠 두 장, 내 바지 하나 모두 만 원대 제품을 샀다.

(19,900원이어도 만 원대임은 분명하다.)

나는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쇼핑몰에 오니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아, 이것이 속세의 맛인가!  


그다음 내가 좋아하는 한국식 우동을 먹으러 간다. 우동집은 아웃렛 쇼핑몰 건너편에 있다. 재작년인가 작년에 왔을 땐 4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5천 원이 되었다. 멸치 육수에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지는 맛은 여전하다.

 

흐트러뜨려서 사진이 좀 그렇지만 아주 맛난 우동


옛날에 기차역이나 터미널에서 한국식 우동(=가락국수)을 많이 먹었다. 나는 이 담담하고 개운한 맛이 참 좋은데 한국식 우동집이 요새는 많지 않다.

동생네 집 근처에 맛있는 우동집이 있어서 동생에게 추천했더니 동생은 가보더니 "뭐가 맛있냐? 밍밍하더만."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입맛은 참 다르다. 그 맛난 우동집은 두 번밖에 가지 못했는데 문 닫고 없어져 버렸다. 이번에 온 우동집은 오래오래 가길 바란다. 비록 내가 자주 가지는 못하더라도.

 

배를 채우고 걷기 시작한다.

남편이랑 연애할 때 많이 걷던 길이다. 냉전 중에 같이 갔던 가게가 있던 자리도 보인다. 비록 가게는 다 바뀌었지만.

대학 새내기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갔던 이자카야는 이제 미용실로 바뀌어 있다. 이자카야에 앉아서 4월인데 눈이 온다고 신기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길거리 산책이 끝나고 마트 구경을 한 후에 옆에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확실히 아까 간 아웃렛 쇼핑몰과 백화점은 분위기가 다르다. 좋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백화점 1층 매장의 화장품 향기를 맡으니 기분이 색다르다. '아, 이것이야말로 속세의 맛이구나!'

오래전에 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에 캐주얼한 크로스백을 메고 있지만 나는 당당하다. 외관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마트와 아웃렛 쇼핑몰에서 나와 비슷한 차림을 한 할머니들을 많이 본 터라 주눅이 들 만도 하지만 편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지하 식품 매장에 가서 치즈를 구경한다. 우리 동네 마트는 친농가 마트라 수입 치즈가 없는데 여기는 치즈며 하몽이며 버터며 종류가 많다. 리코타 치즈와 포션 버터만 집어 들고 쇼핑을 끝냈다.




어제 산 츄리닝 바지가 잘 맞는다며 오늘 아이가 새로 산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 나도 새 옷을 오늘 입었다.

오늘 아침에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해 먹으니 브런치 맛집에 온 기분이다.

오랜만의 쇼핑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속물이어도 상관없다. 가끔씩 속세의 맛을 충전하러 가야겠다.

어제 쇼핑한 물건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어떤 버그가 발생하는데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엔터를 치면 엔터를 친 다음 문장이 줄바꿈되어야 하는데 단락 전체가 줄바꿈되어 버립니다. 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걸 어디다 문의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답답하네요.

일단 쓰긴 써야 해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스페이스바를 누른 후에 엔터를 치고 있습니다만, 혹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좀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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