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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20. 2022

오늘따라 짜증 나

1. 인라인과 한우 핫도그


미술학원에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갔다. 간식을 먹고 인라인 수업을 가겠다고 하여 상가 오뎅 가게에 들렀다. 간단하게 물떡 꼬치(1,500원)나 오뎅 꼬치(1,800원) 하나를 먹으라고 하였으나, 아이는 그 집에서 가장 비싼 한우 핫도그(3,000원)를 먹겠단다. 핫도그를 먹은 지 오래됐고 꼭 먹고 싶다는 아이의 주장에 따라 핫도그를 주문했다.

 

핫도그를 먹으며 아이는 말했다.

"아, 허리 아파."

"허리가 왜?"

"몰라. 허리 아파."

감각이 예민하여 평소에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자주 말하는 아이다. 무릎 아파, 발목 아파, 손가락 베었어, 벌레 물린 데 아파. 나는 아이에게 "어디가 아파?"라며 관심을 가져주다가도 아이가 너무 자주 아프다고 할 때는 "인간은 누구나 아픈 데가 있어. 좀 참아."라고 말한다.


"아 맞다! 나 아까 미술학원에서 넘어졌어. 의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의자가 뒤에 있어서 넘어졌어."

"그랬구나. 그래서 허리 다쳤구나. 누가 의자를 뺀 건 아니지?"

"응, 의자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앉았어. 아, 허리야. 허리 아파. 앉을 때도 아프고 걸을 때도 아파."

"인라인 가기 힘들겠어?"

"인라인 수업 가면 많이 넘어지는데 허리 아파서 안 될 거 같아."


아이가 다쳐서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인라인 선생님에게 오늘 결석을 하겠다고 연락했다. 그런데 짜증이 확 몰려온다.  


아이가 인라인을 배우고 싶다고 수 차례 얘기하여 대기까지 걸어서 등록한 인라인 수업이었는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는 첫날 아이는 "내가 인라인 수업을 다니고 싶다고 했나?"라고 하여 나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러면서 곧바로 "아니, 내가 뭐 안 가겠다는 건 아니고."라는 말을 덧붙였다. 첫 수업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진 않고 넘어지는 방법과 자세만 배웠다고 한다.


두 번째 수업에 드디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려나 했더니 그 전날에 발목을 삐끗하여 인라인을 탈 수 없겠다고 하였다. 결국 결석.

세 번째 수업은 선생님이 몸이 안 좋다고 하여 수업이 취소되었다. 네 번째 수업에 드디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수업을 하고, 그다음 주는 어린이날 주간이라 수업이 없었다. 1주일에 한 번 가는 수업인데 6주 동안 3번밖에 못 갔다. 거기에 오늘 결석을 또 얹었으니 7주 동안 3번 출석.  


학생 사유로 결석하면 보강도 안 되고 수강료를 빼주지도 않아서 돈도 아깝고, 2주에 한 번 꼴로 수업을 빠지니 아이의 실력도 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인라인 수업을 안 갈 거면 3천 원 짜리 한우 핫도그는 왜 먹은 건지? 간식을 먹지 않고 집에 와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면 되는 건데 말이다. 케첩을 할짝할짝 핥으며 핫도그를 세월아 네월아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2. 양배추와 기타


아이가 다친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니 짜증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하며 집에 왔다. 아이에게 얼음팩 찜질을 해준 다음에 저녁 준비를 한다.


오늘의 메뉴는 훈제오리고기와 양배추 쌈이다. 양배추를 보니 2차 짜증이 난다.

며칠 전에 남편과 큰 아이가 살찌는 것에 대해 대화를 했다. 남편은 찐 양배추 쌈이 몸에도 좋고 살도 안 찔 것이라며, 본인과 큰 아이의 다이어트 및 온 가족의 건강을 위해 양배추 쌈을 해 먹자고 했다.


"양배추? 애들이 양배추를 먹을까?"

"애들 안 먹는 것도 자꾸 먹여야지."

"근데 양배추 들고 오기 엄청 무거운데."

"에이, 양배추가 뭐 얼마나 무겁다고?"

여기서 나는 발끈했다. 나는 차도 없이 장을 봐서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오는데 양배추가 얼마나 무겁냐니! 남편은 발끈하는 나의 모습에 "반 통만 사면 되지. 아니다, 배달시키면 되잖아."라고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며칠 후 남편이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뭔가를 사 왔다.

"뭘 사 왔어?"

"응. 소화 잘 되는 우유랑 두유랑 빵. 다 내가 가져갈 거야."

"집에 일반 우유도 없는데."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너무 무겁잖아. 배달시켜."

그 말에 갑자기 빈정이 확 상했다. 며칠 전에 양배추는 별로 안 무겁다고 하더니만 본인은 본인 먹을 것만 사 오고 나머지는 무겁다고 안 사 왔다고?

"뭐야? 자기밖에 생각 안 하냐!!!"

"왜? 뭐? 머리 자르고 필요한 거 사온 건데. 맨날 나한테 뭐라 그래."

나는 나대로 서운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기분이 상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양배추를 하필 오늘! 잎을 뜯어 씻고 있자니 며칠 전에 꾹꾹 눌러놨던 서운함과 짜증이 올라온다. 그러나 남편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타 연주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미동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다. 머리를 식힐 겸 치는 기타임을 알지만 그의 베짱이질이 거슬린다. 오늘따라 듣기가 싫다. 기타 연주가 방에서 허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이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찐 양배추, 오리고기와 양파구이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곧 글을 올리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괜찮다고 올리라며 흔쾌히 말한다. 거기에 덧붙이는 한 마디.

"(내가) 숨만 쉬어도 미워하지?"라고..


그래도 저녁은 잘 먹었다. 역시나 찐 양배추 쌈은 애들에게 외면당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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