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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15. 2022

책, 사느냐 빌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책만은 돈을 아끼지 않고 사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책을 사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구입한다. 단, 원칙이 있다. '읽을 책'만 사는 것. 당장 읽지 않을 거면서 언젠가는 읽겠다는 생각으로는 책을 사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책장에서 관상용(?) 소품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읽다가 포기한 책들도 물론 있다. 생각보다 재미없거나 굉장히 어렵거나 읽다가 딴 책으로 빠지거나 하는 경우들이 이따금 생긴다. 그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은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소설이다. 끝까지 못 읽은 소설은 내 기억엔 없다. (쓰다 보니 이렇게 단정 지을 건 아닌 것 같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데미안>은 한 페이지 읽고 포기했다. 또르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포기한 명작이 수두룩한 것 같다.)


  소설은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읽게 된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한 인물들이 있어서 한 권을 읽는 내내 즐겁다. 어떤 소설은 이야기뿐 아니라 배경과 문화로 즐거움을 준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그랬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았을 두꺼운 2권짜리 책이었는데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 선물한다."라는 말과 함께 받은 책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읽기 시작했다. 이슬람 화법()과 서양 화법을 놓고 갈등하는 오스만 제국의 궁정 세밀화가들의 이야기라 굉장히 색달랐다. 생소한 시대, 장소, 문화적 배경 덕분에 읽는 동안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도 아주 박진감 넘치게 재미있다.  

 

   괴로운 소설도 있다.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은 몰아치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듯하여 밤을 새우며 읽는 몰입감이 있지만, 읽고 나면 악이나 인간의 본성 등에 대한 고민 때문에 개운치가 않다. <종의 기원>을 읽고는 악몽도 꿨다. <내 심장을 쏴라>와 <7년의 밤>, <28>까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종의 기원> 이후에 정유정 작가님과 이별했다. (아,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ㅠㅠ) 개인적으로는 <내 심장을 쏴라>가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무거워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쾌하고 참신한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한다. (갑분추?)  

소장 중인 정유정 장편소설


  내가 취약한 분야는 예전엔 자기 계발서였고 요즘은 '자녀 교육 이렇게 해라.' 류의 책이다. 나는 좀 삐딱한 면이 있어서 자기 계발서를 싫어했다. '나한테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었다. 잘나지도 않은 주제에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며 자기 계발서를 거부했다.


  아이들을 잘 교육해 보겠답시고 작년부터 자녀 교육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초등 질문의 힘> 등. 모두 좋은 책이나 읽을수록 수심이 깊어진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 같지 않고 이제라도 뭔가 해봐야지 싶어도 애들이 따라와 주지도 않는다. 결국 드는 생각은 저자가 운영하는 학원에 보내고 싶다는 것. 에잇! 남는 것은 자책과 분노뿐이다. 이제 자녀 교육 서적은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소장 중인 자녀 교육 '이래라 저래라' 책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 아이 방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방 하나를 정리하면서 내 책들을 대거 정리했다. 오래되어 상태가 안 좋고 안 볼 것이 뻔한 책들은 과감히 버렸다. 상태가 좋지만 안 볼 것 같은 책은 아파트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아파트 도서관에 기증하려면 도서관에 있는 책이 아니어야 기증할 수 있다. 아파트 도서관은 규모가 작고 책이 적다. 소설 코너를 몇 번 스캔한 결과 우리 집에 있는 소설을 기증하면 딱일 것 같았다. 상태 좋고 재미도 있지만 내가 지금 당장 읽지는 않을 책, 그러나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지면 도서관에 가서 읽으면 될 책 몇 권을 골라놓은 후 도서관에 전화하여 책 제목을 읊으며 도서관 보유 여부를 확인했다. 내 예상대로 도서관에는 모두 없다고 하였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갈 적마다 스캔을 해뒀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직원이 묻는다.

  "그런데 다 5년 안 넘은 책이죠?"


 책 기증의 조건에 발행한 지 5년이 안 되는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나 보다. 확인해 보니 모두 5년이 넘었다. 구닥다리 옛날 책들은 이미 버렸고 나름 최신(?)의 깨끗한 책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따져 보니 애들 태어나기 전에 샀던 책들이니 최소 10년은 된 책들이다.


  고백하자면 지난 5년은 나의 독서 암흑기였다. 일하는 데, 애들 키우는 데 에너지를 다 써서 책을 읽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유 시간엔 TV 예능이나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모두 훌륭한 매체들이라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웃음의 동반자들이다.) 작년부터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작년과 올해 산 책들을 도서관에 기부할 수는 없다. (솔직히 아직은 아깝다.)


   이번 책 정리는 내가 책을 사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읽을 책을 사서 꼭 읽긴 하지만 같은 책을 한 번만 본다. 반복하여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어떤 이는 좋아하는 책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는데 나는 그런 일이 없다. 두세 번 보는 책도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 가끔이고 그마저도 좋았던 부분을 부분적으로 찾아본다. 그러나 나도 변명거리는 있다. 한 책에만 매달리기엔 세상에 새로운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싫었다. 읽은 책 또 읽기, 본 영화/드라마 또 보기, 갔던 여행지 또 가기는 금기 사항이었다. 짧은 인생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갔던 여행지를 또 가는 금기는 깨진 지 오래다. 아이들이 있으면 갔던 곳을 가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가본 장소를 가면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본 드라마를 또 보는 금기도 깨졌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 '나의 아저씨', '그해 우리는'은 두 번씩 봤다.) 책은 아직 금기를 못 깬 기분이다.


  어쨌든 책장의 책은 정리해야겠고, 버리긴 아까운데 도서관에선 거부를 당하니 책을 사는 것에 위축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을 한 번 더 볼 것인가?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인가?'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다. 신나는 책 쇼핑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책을 사느냐, 빌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책을 사는 것의 단점은 돈이 은근히 많이 든다는 것이다. 휴직 중이라 돈을 아껴야 해서 책을 좀 덜 사볼까 싶다. 마음 같아서는 애들의 만화책을 덜 사주고 싶지만, 사실 애들은 같은 만화책을 10번 이상 반복하여 보므로 돈이 안 아깝다. 한 번만 읽는 내가 문제다. 그리고 다른 단점은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의 책장은 애들 책과 어른 책으로 포화 상태다. 두 줄로 꽂는 장이 아닌데 두 줄로 겹쳐서 꽂혀 있다.

교보문고 플래티넘 등급 (3개월 내 30만원 이상 구매), 혜택이 뭔지 알 수 없음

  도서관의 단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아파트 도서관에 책이 별로 없다. 신간은 얼마 없고 빌리기도 치열하다. 구간은 더욱 얼마 없다. (내 책이라도 좀 받아주지.) 대여 기간은 1주일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이상하게 1주일이 부족하다. 하루 이틀 연체하면 연체 기간의 두 배 넘는 기간에 대여 금지다. 아파트 도서관이 아닌 도서관은 거리가 좀 있다. 큰 도서관에 오랜만에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은 있는데 왠지 발길이 안 떨어진다.  


  글을 쓰다 보니 왠지 책을 사는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고 있는 기분이다. 오래된 책을 버리는 것에도 죄책감이 들어 책 사는 것을 줄여볼까 했는데 마음을 정리해 보니 사서 읽는 게 남는 느낌이다. 나의 가정환경 미화와 지구 환경 보호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다음 주엔 애들이 안 읽는 책들이나 처분하여 책장 공간을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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