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 Sep 13. 2022

글쓰기의 이정표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고

브런치에 가입하고 몇 달간은 쓰고 싶다는 강한 마음만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물불 안 가리던 몇 달이 지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좀 부끄러워졌다.

'브런치에는 잘 쓰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내가 쓴 글, 글이 맞나?'


"다들 좋은 글을 쓰면서 왜 그리 자책들을 하시는 거예요?"라는 이웃 작가님의 글을 보며 '그래, 저분이 얘기하시는 '다들'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 거야. '좋은 글'에 내 글도 포함되어 있을 거야.'라고 자기 위안으로 삼고 다시 즐겁게 쓰기로 했다.    


글럼프(글+슬럼프)는 몇 달에 한 번씩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떤 때는 남과 비교하다가, 어떤 때는 구독자 수나 조회수를 보다가, 또 어떤 때는 그냥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다. 잘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쓰겠다는 건데도 시작하려면 아득하다. 내가 글이란 걸 어떻게 썼더라?


글럼프일 땐 단 한 자도 쓰기 싫다. 브런치 글쓰기를 누르고 빈 화면을 보다가 그냥 닫는다. 그러나 이 기간이 길어지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을 알기에 뭐라도 써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글럼프를 겪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아무거나 쓴다."라고도 한다. 일단 시작하면 정말 뭐라도 쓰긴 쓴다. 그렇지만 이런 기간엔 별게 다 거슬린다. 문장 끝에 '했다'라고 쓰는 것도 거슬린다. 너무 일기 같고 딱딱한가? 어미를 '합니다'로 바꾸면 더 잘 써질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빠진다.


글쓰기에 대해 따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글은 그냥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순간 '이러니 내 글이 늘지 않고 고만고만하지.'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 이렇게 써도 될까? 이게 맞는 걸까?


고민이 깊어지기 전에, 매우 시의적절하게 좋은 책을 만났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라는 책이다. 작가이자 37년간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쳐온 세계적인 글쓰기 강사인 저자는 25년간 이어온 선禪 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킨 글쓰기 노하우를 보여준다. (저자 소개 중)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의 막막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고백한다.

두 달 전에 꽤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솔직히 나는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는지 의아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 p. 20

저자 역시 글쓰기가 매번 새롭다고 하니 반갑다. (남의 불행이 반갑다는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막막한 일인가 보다. 글쓰기에 지름길 따위는 없는 듯하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노하우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단지 '환경 가리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꾸준히 쓰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저자의 따스한 조언은 심금을 울린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이자 작가(지망생 포함)가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해치지 않으며 쓰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쓰면서 글쓰기의 기쁨을 발견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여기저기에 담고 있다. 


이 책이 나의 글쓰기 여정에 친절한 이정표가 되어 준 느낌이다. 읽으면서 절절히 공감했던 부분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한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고 그대로 밀고 나아가라.  

    맞춤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라.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p. 26~27)  


멈추지 말고 써라.


  글쓰기 훈련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을 것이다. 이런 글쓰기 훈련은 어떤 식의 논리적인 형태도 필요 없다. 제8장의 행동 다음에 반드시 제9장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의 원칙은 없다. 바깥에서는 무섭게 천둥이 치고 있는데도 할머니가 만들어 준 따뜻한 수프를 먹고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으며 오직 그 순간 글 쓰는 사람과 다른 모든 것과의 연결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글쓰기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된다.

  이 훈련은 아름다운 정원에 가지치기를 하러 나가기 전, 다시 말해 좋은 책과 소설을 쓰기 전에, 우리의 힘을 갖추어 나가는 거친 야성의 숲과 같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건대, 그 정원에 닿는 길은 쉼 없는 훈련뿐이다.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맞춰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p. 34~35)


글이 안 써질 때도 쓰는 법.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수시로 옆길로 새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쓰기 작업은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엄숙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고독한 글쓰기에 전념하기보다는, 친구와 멋진 식당에 앉아 인간의 인내심에 대해 토로하거나 글쓰기의 고통을 위로해줄 상대를 찾아가는 데에 마음이 이끌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극히 단순한 임무를 스스로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선가禪家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을 하지 말라.

  (p. 55~56)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을 쓰는 데에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 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아가라.

  만약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장편을 써라. 쓰고 싶은 글이 에세이이거나 단편이라면, 그렇게 쓰면 된다. 장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그 장르가 갖는 특성을 배우게 된다. 당신은 점점 자기만의 기술과 기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 자세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쓰기를 배운답시고 쓸데없이 대가들과 문학 강의를 좇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훌륭한 대가를 열 사람이나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 (p. 66~67)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자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p. 171~172)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 먹히지 말라.


  글쓰기에서도 같은 진실이 통한다.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 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있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늘 똑같다. ‘어리석은 짓이야. 돈 한 푼도 벌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경력도 쌓지 못하고 있잖아. 이제는 내 걱정을 해 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너무 외로워. 이런 게 싫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한심해. 그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작가가 되겠단 말이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 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p. 181~182)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 불편러의 시선을 따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