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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18. 2022

부부, 결혼식, 그리고 글

장강명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고

이번 글은 좀 이상한 독후감이다. 사실 내 브런치 매거진 <가장 개인적인 리뷰>의 북리뷰가 다 이상하지만, 이번 글은 더 이상할 예정이다. 독후감인지, 에세이인지, 그냥 감정 푸닥거리인지 모르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딴 글을 왜 남겼어?'라며 후회할 수도 있지만, '쓰고 싶을 때 남겼어야지. 왜 안 남겼어?'보다는 나을 것 같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완독한 날 


남편은 늘 그렇듯이 늦은 시간 퇴근했다. 나는 보통 아이들을 재우며 잠이 드는데 이날은 고민이 있어서 잠이 들지 못했다. 하나는 큰 아이의 건강 검진 결과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작은 아이의 영어 학원 때문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관련 고민을 얘기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였다. 나는 화제를 전환하여 남편에게 물었다.


"장강명이라고 알아?"

"어. 알아!"

남편은 책을 거의 안 읽는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의 일과 관련된 책만 본다. 그런 남편이 장강명을 안다고 하니 반가웠다.


"자기가 알 정도면 유명한 작가긴 하네. 장강명이 유명한 소설가인데, 사실 그 사람 책 난 한 권도 안 읽어봤거든. 브런치 이웃 작가님이 추천해 줘서 장강명 에세이를 빌려와서 읽었는데 진짜 재밌더라고."

"아! 장강명 에세이?"

"알아?"

"아니, 들어오면서 보니까 식탁에 책이 있더라고. 내가 장강명을 어떻게 아나 했더니 좀 전에 그거 봐서 머릿속에 남은 거였네. 사람이 이렇다니까. 잠깐 본 걸로 안다고 착각을 해."

"아 뭐야? 그런 거였어? 이 사람이 연대 공대 나와서 건설사 들어갔다가 기자 됐다가 소설가로 등단을 했거든. 아내랑 결혼식을 안 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고 있는데, 아이를 안 갖고 둘이 살기로 했대. 작가가 결심이 흔들릴까 봐 정관수술받으러 가서는 의사가 자녀가 몇 명이냐 물으니까 대충 두 명이라고 둘러댔대. 애가 없다고 하면 수술을 안 해줄까 봐."

"하긴 그렇겠네. 의사도 부담일 거 아냐."

"작가 어머니랑 아내는 서로 싫어해서 서로 안 보여주고 있대. 명절에는 본가에 혼자 가나 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들고 싶지 않대네."

"차라리 애를 낳았으면 어머니랑 아내랑 자연스럽게 보게 될 텐데." 

"아니야. 애 때문에 억지로 만나야 되고 그런 건 이 작가가 원하는 게 아니야. 하여간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좀 웃기기도 한데, 자기가 보기엔 이 사람 좀 특이할 수도 있겠다."


한참을 주절주절 얘기하다 보니 남편이 웃는다.

"하루 종일 애들이랑만 말하다가 어른과 대화해서 되게 신났나 보다? 책 이야기를 엄청 정성껏 하네."

"아니, 그게 아니라. 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어. 보라카이에 간다고 아내가 비행기랑 호텔이랑 맛집이랑 신나게 알아봤는데, 막상 보라카이의 기온 같은 건 알아보지도 않아서 출발하면서 '거기 추우면 어쩌지?' 막 이래. 비행기는 6시간이나 연착돼서 거기 도착하니 밤이고 겨우 힘들게 간 호텔은 바깥 전망도 안 보여. 그때 아내가 '다 때려치워' 단계로 들어선 거야. 이 작가는 자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내가 '난 왜 태어났지?' 단계까지 가지 않게 아내의 기분을 막 북돋워주려 해. 나는 이 부분에서 되게 공감했어."

"오, 그래!!! 자기 그럴 때 있어. 자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내가 그러지 않게 해 주려고 하지."

"내가 태안 갔을 때 애들 내복 하나도 안 챙겨갔잖아. '난 왜 엄마가 돼가지고 애들 내복도 안 챙겼지?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이러니까 자기가 그런 건 별거 아니라고, 사면 된다고 서산 롯데마트까지 1시간 운전해서 갔었지. 장강명 작가도 아내가 맛집은 다 조사했는데 막상 위치는 조사 안 해가서 헤맸을 때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도를 구해 오고 생색을 내거든. 자기가 생색낼 때랑 비슷하더라. 이 부부 대화를 읽다 보니까 우리 부부 대화도 재밌는 거 많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쉬워."

"싸이에 옛날에 많이 남기지 않았어?"

"싸이 사진첩은 복구됐는데 다이어리는 안 됐더라."

"그럴 리가 있나. 핸드폰 줘봐."

"이거 봐! 0개라고 나오잖아."

"달력을 앞으로 넘겨서 찾으면... 이거 봐. 있잖아."

"어, 있네? 우리 신혼일기 그때  지인들한테 꽤 인기 있었어."

"예전에 썼던 걸 글로 쓰려면... 삼성 덱스라고 알아?"

"아니. 처음 들어."

"삼성 덱스를 연결하면 워드에 복사 붙여넣기하는 게 편하거든. 자, 이걸 이렇게 연결해서 허용하기를 눌러주면 싸이가 컴퓨터 화면에 나오지. 수정하기 눌러서 전체 선택하고 복사하고 워드에 붙여넣기. 짜잔! 내가 하나 도와줬다?"

"어우, 생색은... 하긴 난 일일이 치려고 했네. 나 타자 빨라."

"한심좌라고 알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막 불편하게 낑낑대고 하는 사람 있으면 한심좌가 해결해주고 그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보거든."

"그럼 내가 한심하게 일해서 한심좌야?"

"아니지. 내가 해결해주고 널 한심하게 보니까 내가 한심좌지."


내일부터 싸이 다이어리를 샅샅이 뒤져서 재미있는 글감을 모아보겠다며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아이들 때문에 심란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완독한 다음날 


어제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겁게 잠이 들었는데, 왜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지 않을까?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 부부가 결혼식을 생략한 장면이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장강명 작가와 아내인 HJ는 "하객 수나 주례 선생님의 지명도나 식장의 위치나 장미 장식을 얼마 짜리로 했는지나, 뷔페 코스 단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좋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소극장에서 "총 하객 수는 100명 이내로, 친한 친구들과 양가 부모님만 불러서, 주례가 없는" 이벤트와 같은 결혼식 말이다. 결국 어머니의 반대와 이벤트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식 자체를 올리지 않았다. (p. 57)


실용성을 중시한다고 자부하는 나는 허례허식이 가득했던 결혼식을 올렸다. 준비하는 내내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나에게는 양가 어른을 설득할 강렬한 신념과 에너지가 있지도 않았거니와, 부모님한테 순응하는 경향이 강한 남편마저도 설득하기 귀찮았다. 어차피 결혼 상대를 바꿀 것도 아니고, 결혼 상대의 부모님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가 따르는 것이 가장 무난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벤트를 싫어하는 내가 스몰 웨딩이라는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는 건 무리였다. 기존에 구축되어 있는 제도 - 이를 테면 식장,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웨딩 플래너 등 - 에 편승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한국식 결혼식은 우리 생각에 그런 허세와 불필요한 지출의 결정체였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여자들은 싫다고 하면서도 그 호사스러움에 은근히 끌리고, 남자들은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인데......"라는 권유 겸 협박을 이기지 못한다. 남들의 시선이 자식의 행복보다 중요한 부모들은 "요즘 이거 안 하는 분은 정말 안 계세요"라는 말에 넘어간다.
(중략)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은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미친 짓거리는 온 사회 구성원이 거기에 협조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더 강화될 뿐이다. 사교육이나 학벌 같은 문제가 그렇다. 언제나 더 똑똑하고 더 진보적인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앞 세대보다 더 미쳐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관습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편견과 새로운 속박을 만들어냈다.
- p. 48~49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작가는 비판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하지만, 허례허식이 싫다고 하여 모두가 작가 부부처럼 결혼식을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진보적인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조용히 평화로이 살고픈 일개 평범한 사회 구성원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끽소리 한 번 내보다가 그냥 또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 사회에, 제도에 따르며 산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완독한 다다음날 

 

어제는 왜 그렇게 울적했는지 모르겠다. 이미 올린 결혼식을 이제 와 어쩔 수는 없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야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결혼 생활은 마음에 든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깨어있는 자가 깨어있다는 이유로 용기 없는 사람을 탓할 권리는 없다.


사실 결혼식 때문에 울적한 건 아니었다. 다만, 결혼식 얘기를 쓰면 재미있겠다고 들떴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이걸 나중에 시부모님이 읽는다면?'이란 상상을 하게 됐다. 의도치 않게 남편이나 시부모님을 원망하는 듯한 부분이 써질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빼고 저런 부분은 빼고 쓰면 어떨까? 그럼 남는 게 없잖아. 그럴 바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낫다. 그리고 그때를 회상하고 요즘의 결혼 풍습도 찾아보면서 쓰려니 귀찮고 엄두가 안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이런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로 귀결한다. 성공한 사람도 아닌 내 글을 누가 읽는다고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이 모양 이 꼴대로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화려하지 않은 인생은 용서할 수 있어도, 의미 없는 삶은 용서할 수 없는데 삶의 의미 찾기가 이리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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