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주

by JOO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자유 시간이 몇 시간 생겼다. (남편도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밤에 온다.) 이불 빨래와 일반 빨래를 돌리고 아이 실내화를 빨고 집안 청소를 하면서 자유 시간에 뭘 하며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다. 다음은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를 할 차례. 화장실 청소까지만 하고 자유 시간을 보내리라! 저녁은 버거킹 가서 먹을까? 룰루랄라~


문득 우리 아파트에 사우나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매달 관리비만 내고 사우나를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 없을 때 할 수 있는 활동이다! 게다가 나 혼자 가니 금방 나와도 되고 멍때리며 말도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난 뜨거운 곳에 오래 있으면 현기증이 나서 목욕탕, 사우나, 찜질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찜질방에 두어 번 가봤는데 다 친정엄마와 함께였다. 엄마랑 목욕탕에 가면 이상하게 피곤하다. 엄마들은 딸이 다 커도 잔소리를 한다. 때는 밀었냐, 뜨거운 물에 더 한참 있어라, 벌써 나가냐, 한 번 더 씻어라 등등. 오늘은 엄마의 잔소리 없이 나 혼자 간다. 기다려라, 사우나!!!


사우나 짐을 챙긴 후,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휙 집어넣고 길을 나섰다. 처음 이용하다 보니 들어가는 법을 몰라서 데스크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탈의실에 들어가니 어떤 아주머니가 사물함 열쇠를 안에다 넣고 문을 닫아서 문이 잠겼다고 청소 아주머니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렇게 깨 벗은 채로 나갈 수 없잖아요."

"네, 밖에 나가서 얘기해놨으니 직원이 올 거예요. 좀만 기다려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 저 심정 잘 알지.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옷장으로 갔는데 옷장이 안 열린다. 아까 그 청소 아주머니와 문이 잠겨서 곤란을 겪고 있는 아주머니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사물함은 어떻게 써요?"라고 물었다. 청소 아주머니가 대답하기도 전에 '깨 벗은' 아주머니께서 대답하신다. "그 사물함은 별도로 신청한 사람이 쓰는 거예요. 그건 돈 내고 쓰는 거고요, 저어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옷장이 있어요." 친절하시다! 나는 헐벗은 상태에서는 누구와도 대화하기 싫을 거 같은데, 아무한테나 친절히 정보를 알려 주는 K-아주머니의 클라스.



옷장을 열쇠로 열고 옷을 다 벗은 다음 목욕탕으로 들어가는데 어랏? 수건이 없다. '수건을 챙겨야지' 생각은 했는데 챙긴 기억이 없다. 그래도 과거의 내가 혹시나 무의식 중에 수건을 챙기지 않았을까 기대해 보며 옷장 문을 열고 짐을 샅샅이 뒤진다. 역시나 없다.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그래도 다 씻고 나서 수건의 부재를 안 게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 씻고서 물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수건이 없는 걸 알았다면? 어우,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수건을 두고 왔는데 집에 다녀와도 되나요?"

데스크에 앉은 직원에게 물었다.

"1회권은 3시간 이내로 사용하실 수 있으니 다녀오세요."


집에 가서 잠시 고민했다. 그냥 집에 있을지, 다시 갈지.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기엔 너무 억울했다. 수건을 두 장 챙겨서 다시 길을 나선다. 한 장도 충분하지만 두 번 걸음 한 게 억울하니 두 장을 챙긴다.


"아까 수건 두고 갔던 사람인데, 다시 입장 처리를 해야 하나요?"

"같은 번호로 이용하시면 그냥 되실 거예요."


그러나, 같은 번호의 열쇠는 뽑히지(?) 않는다. 다시 나가서 입장 처리를 한다. 안에 들어가서 부여받은 같은 번호의 열쇠는 역시나 나오지 않는다. 직원에게 나가서 또 말을 건다. (벌써 몇 번째 대화냐...)


"열쇠가 안 열려요. 제가 들락날락해서 그런가 봐요."

"아, 그러시면... 잠시만요." (이쯤에서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음)

직원이 뭔가 시스템을 어떻게 어떻게 해주고서 해결이 됐다.


드디어 집에서 출발한 후 30분 만에 땀범벅이 된 채 사우나에 입장했다. 샤워를 후다닥 하고 온탕에 몸을 담갔다. 37.0도. 여긴 왜 아무도 없지? 나에겐 적당한 온도다. 그렇지만 다음 단계도 도전하기로 한다. 38.9도. 좀 뜨겁다. 기다리면 따뜻해질 것이다. 뜨끈하다. 몸이 온수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다음 단계에도 도전할까? 이번엔 41.0도다. 이 최고 레벨 탕에 사람이 가장 많다. 발을 담그는 순간 어제 신발 때문에 까진 발 뒤꿈치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참고 몸을 담갔는데,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 무림 고수들을 따라 하는 게 아니었다.


여차저차 다 씻고 나오니 한 20~30분이 된 것 같다. 한 것도 없이 너무너무 피곤하다. 몸이 축 늘어진다. '빨리 나가서 버거킹에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한테 전화가 온다.

"엄마, 지금 할머니가 싸준 김밥 먹고 있는데요, 엄마한테도 갖다 드릴게요."

그래. 힘도 없는데 버거킹은 무슨 버거킹이냐. 나의 자유 시간은 이렇게 끝이 났구나. 허무하도다!


새로운 경험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란 "학습자가 목표에 도달하는 확실한 방법을 모르는 채 본능, 습관 따위에 의하여 시행과 착오를 되풀이하다가 우연히 성공한 동작을 계속함으로써 점차 시간을 절약하여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앞으로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여 사우나 이용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자유 시간에 안 하던 거 하지 말고 집에 있자는 교훈은 덤이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주*.

* '주'로 말을 끝낸 이유는 제 필명 JOO를 굳이 써먹기 위함입니다.


어머님표 김밥 (이집 김밥 맛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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