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Horner의 'The Ludlows'는 영화 <가을의 전설> OST다. 중학교 때 본 <가을의 전설>은 별 감흥이 없었다. 사실 영화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직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음악과 긴 머리 휘날리는 브래드 피트뿐. 영화는 별로였지만 음악만은 가슴에 확 남아 자꾸 생각났다.
<가을의 전설> OST를 카세트테이프로 사서 매일 하굣길에 반복하여 들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농산물 청과 시장 옆에 있어서 여름만 되면 썩은 배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면 농산물 시장길을 가로질러 버스를 타러 가야 했는데, 길에는 온통 짓무른 배춧잎이 '그린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그 짓무른 배추를 밟으며 길을 가다가 간혹 미끄러져 휘청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 씨!"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중2 때 같은 반 친구였던 G와 J는 원래 둘이 친했는데, 내가 G와 가까워지게 되면서 셋이 단짝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중학교 1학년 때에 단짝은커녕 친구가 거의 없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생긴 단짝 친구들 덕분에 조금 행복했다. 외롭지 않은 학교 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편지도 주고받고 쉬는 시간마다 붙어 있으며 잘 지냈는데, 어느 날부턴가G와 J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고 물어도 알려주지 않고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나는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 애썼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까지 둘을 어떻게 화해시킬까 고민하는 데 내 에너지를 다 썼다. 완벽한 삼인방의 평화가 둘의 싸움으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일까? 둘은 화해를 하고 다시 절친이 되었다. 그런데 완벽한 삼인방은 더 이상 없었다. 둘은 예전보다 더 가까워지면서 나를 은근히 배척했다. 나를 피하고 나를 둘의 대화에 끼워주지 않고 나의 편지에 답장도 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단짝이었던 둘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간 게 잘못이었을까? 둘은 알아서 잘 화해했을 텐데 내가 괜히 나선 것일까? 내가 얘네한테 무슨 실수를 했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를 곱씹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혼자 이어폰을 꽂고 <가을의 전설> OST를 들었다. 하굣길에도 <가을의 전설> OST를 들었다. 학교에서 내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다가 배춧잎에 미끄러질 뻔하여 "아이 씨!"를 외치면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갔다. 쏙 들어간 눈물 다시 불러내야 하는데, 울던 거 마저 울어야 하는데!
아오! 내 인생은 왜 이리 힘드냐? 이놈의 학교도 싫고 농산물 시장도 싫고 썩은 배추 냄새도 싫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해주던 단 한 가지, <가을의 전설> OST 'The Ludlows'.
이 음악이 있어서 그래도 잘 버텼다.
<그 시절 음악과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면서, 그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매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