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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7. 2022

용감한 꼬마 연주자에게

* 작은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씁니다.




규야, 지난주 토요일은 우리 규가 피아노 연주회를 하는 날이었지.


몇 달 전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회 신청을 받았을 때 엄마는 사실 규가 연주회를 희망할 줄 몰랐어. 그때 우리 규는 바이엘을 하고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규는 망설임 없이 얘기했지.

"나 한번 도전해 볼래."

평소에 우유부단하던 네가 이렇게 빨리 의사 결정을 한 것은 처음이라 놀라웠어.


반면에 체르니 30번을 치던 형은 연주회를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지. 형도 1학년 때는 꽤나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4학년이 되니 나서고 싶어 하질 않네. 그 또한 형의 의사니 존중해 주기로 했다.


어쨌든 규는 선생님과 상의하여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정하고 맹연습을 했어. 선생님께 네 수준으로 연주회에 나갈 수 있는 건지 여쭤보니, 바이엘은 거의 끝났고 곧 체르니로 넘어가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 네가 고른 곡은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인 '또다시'였다. 연습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땐가 집에서 규가 이 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아빠가 몰래 말했어.

"규가 이렇게 해서 연주회를 나갈 수 있는 거야?"

엄마도 사실 걱정은 됐지만 태연하게 말했어.

"시간 많이 남았는데 뭘."


피아노 학원에 가서 기존에 치던 체르니와 동요, 반주 책은 쉬어가고 연주회 곡만 연습했지. 레슨실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로만 치다가 원장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로 치던 날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했단다.

"규가 생각보다 너무 떨더라고요. 레슨 없는 날도 시간 되면 보내 주세요. 그랜드 피아노로 쳐보고 가게요. 토요일에도 와야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긴 한데 규는 그 정도는 아니고요. 평일에만 시간 될 때 보내 주세요."

연주회가 약 3주 남은 시점이라 걱정이 되더구나.

"네, 근데 여기서도 떨면 무대에서 괜찮을까요?"

"연습하면 괜찮을 거예요."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 중


평소에 비어 있던 원장실 그랜드 피아노는 연주회 준비 기간 동안 아이들로 북적였어.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밖에서 다른 학생들의 연주를 감상했단다.

"우와! 잘 치는 애들 많다. 좋은 음악도 많고!"

감탄하는 엄마에게 너는 말했지.

"응! 나 그래서 피아노가 다시 재밌어졌어."

  

연주회 준비를 하기 전에 규는 피아노가 재미없어졌다고 말했다. 피아노란 게 그래. 처음에는 배우고 싶은 마음만 앞서지만, 막상 잘 치게 되려면 지루한 연습을 계속해야 하거든. 그런데 연주회 준비를 하며 다른 친구들이나 형, 누나들이 치는 다양한 곡을 감상하며 피아노에 다시 흥미를 느꼈다니 참 좋더라.


연주회 1주일 전, 너는 이 한 곡만 쳐서 지겹다고 했다. 이 곡은 이제 눈 감고도 칠 수 있다고. 그래서 엄마는 확신했단다. 우리 규 무대에서도 잘 해내겠구나.



연주회 당일, 담담한 규와는 달리 형이 더 긴장하더라.

형은 "규야, 너 잘할 수 있어? 틀리면 안 된다. 너 진짜 잘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연신 너에게 해서 엄마 아빠에게 저지당했지. 형이 연주회를 안 나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단다.



우리 규의 순서는 24번째였어. 규를 비롯한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연주회를 준비했는지 알고 있기에 앞에 연주하는 아이들의 순서가 지루하지 않았지. 힘껏 박수쳐 주고 마음속으로 응원했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진과 동영상을 잘 찍을 수 있을지 미리 연습도 했어. 아빠는 사진, 엄마는 동영상 담당이었어.


드디어 우리 규가 나왔어. 규 바로 앞에 고학년 아이들이 나온 후에 규가 등장해서 그런지 우리 규가 아기같이 보였단다. 양복 차림에 옆 가르마 타서 멋진 머리를 한 너는 씩씩하게 걸어가서 반듯하게 인사를 하고 피아노에 앉았지. 다른 남자아이들은 뛰어가듯 등장하거나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등장하고 인사도 대충 했거든. 약속이나 한 듯 다 그러더라. 똑바로 걷고 인사도 잘하는 남자아이는 너뿐이었어. 그리고 연주도 참 잘하더구나. 여태까지 연습한 중에 제일 잘했어. 너는 끝나고 한 군데 틀렸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어딜 틀렸는지도 몰랐어. 어리게만 보였던 규가 저 큰 무대에서 의연히 연주하는 모습에 그저 감동을 받았단다.   

무대에서 열연 중


다 끝나고 너는 "힘들어. 피곤해.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으면 신청하지 말 걸! 다신 안 해!"라고 말했지. 멋있었다고 말해 주니까 "옷도 마음에 안 들었어. 까만 옷 입고 싶었는데 회색이었어. 맘에 안 들어!"라고 대답하는 너. 무대에서 보이던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 징징이로 다시 돌아왔구나. 왜 안 힘들었겠니?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일인 걸. 그래도 잘 해내서 대견하고 기특해.


참, 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땐가 피아노 연주회를 나갔어. 그때의 감정이나 성취감은 기억이 안 나고, 그때 입었던 빨간 원피스가 참 마음에 안 들었던 것만 기억이 나는구나. 그래서 3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얼마 전에 외할머니한테 따졌단다. 그때 빨간 원피스는 왜 입힌 거냐고. 엄마도 참 철이 없지. 그러고 보니 넌 참 엄마를 닮았구나.  


어쨌든 이번 무대 경험은 앞으로 면서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큰 무대에 오를 때, 대중 앞에 설 때,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때마다 꺼내보면 좋을 거야.


사랑하고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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