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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1. 2022

공포의 나눔 장터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는 나눔 장터 활동이 있다. 각자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선별하여 가격표를 붙여 판다. 가격표는 100원, 200원, 300원 중에 골라 정한다. 나눔 장터 당일에는 100원 짜리 동전 10개를 준비해 가서 사고팔기 활동을 한다.



나눔장터를 며칠 앞두고 작은아이 규는 장난감 상자를 뒤적이며 팔 물건을 직접 골랐다. 캐리 뮤지컬에서 샀던 요술봉,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샀던 미키 미니 동전 지갑, 몰랑이 연필, 탱탱볼 등 지금은 쓰지 않지만 상태가 좋은 물건들골랐다. 물건을 소독 티슈로 닦은 후 지퍼백에 포장하였다. 가격도 아이가 스스로 매겨서 가격표를 붙였다.



팔 물건들을 준비한 날 밤에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나눔 장터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 내 물건은 누가 사 갈까?"

"규가 준비한 물건은 아기자기한 게 많으니까 여자 친구들이 좋아할 거 같아."

"어! 내 물건 여자 친구들한테 엄청 인기 많을 거 같지?"

"응."

"엽이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판댔어."

"어머! 그걸 누가 산대니?"

"누가 사긴! 내가 사지!"

"(식겁하며) 아이 그걸 왜 사 와? 사 오지 마."

"사 올 거야!"



며칠 후 나눔 장터 날이 되었다. 하교 시간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도 설렜다.

"애들이 뭘 사 올까요?"

"그러게요. 무슨 물건 준비해 갔어요?"

"○○는 문구 세트류요."

"규는 요술봉, 동전 지갑이랑 하리보 젤리요."

"엽이는 장수풍뎅이 애벌레 들고 갔어요."

"역시 곤충 전문가 엽이답네요. 그거 사가면 엄마들이 싫어하겠네요."

네 명의 엄마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우리 아이 규는 양손에 흙이 가득 담긴 우유병(?)을 살포시 안고 조심조심 내려온다. 나와 엽이 엄마의 눈이 마주쳤고, 엽이 엄마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으악! 장수풍뎅이 애벌레 당첨이요.

빨간 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담긴 병


오늘은 매일 놀던 놀이터에서도 안 놀겠다는 아이.

"빨리 집에 가서 꼬물이랑 꿈틀이 집을 만들어 줄 거야."

하아, 벌써 이름도 정했구나.


"얘네 3령이야."

"삼 명이라고? 세 마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1령, 2령, 3령, 4령 할 때 3령이라고! 허물 벗을 때마다 커지잖아!"

"그렇구나. 잘못 들었네. 그럼 엄청 크겠구나."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채집통에 애벌레와 흙을 옮겨 주었다. 진한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3령 애벌레는 정말로 굵고 컸다. 통통한 허연 애벌레에 나는 충격을 받아 아이가 사 온 나머지 물건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엄마, 내가 얘네 얼마나 힘들게 샀는 줄 알아? 엽이가 딱 세 병만 팔았단 말이야. 그거 다 팔릴까 봐 나는 장터 시작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엽이한테 가서 빨리 100원 내고 샀어. 팔릴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영혼 탈출) 허어... 그랬구나. 너 말고 사 간 두 명은 누구니?"

"몰라. 하여간 사서 정말 다행이야."



1학년 2학기 가을 나눔 장터는 그렇게 아이에겐 행복의 장터, 엄마 아빠에겐 공포의 장터가 되고 말았다.

애벌레도 환불이 되나요?

우리, 애벌레가 장수풍뎅이가 될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거 맞지?

왼쪽 병에서 오른쪽 채집통으로 이사함

덧붙임.

애벌레의 충격으로 중요한 사실을 잊을 뻔했다.

아이가 깜짝 선물이라며 머리핀과 머리띠를 건넸다. 엄마 주려고 사 왔다고 한다. 아이의 마음이 참 예쁜데, 하고 다니긴 어려울 거 같다.

이거 하고 나가면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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