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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27. 2022

낭만 한 스푼

아이가 크리스마스 리를 꾸미자고 한 건 열흘 전부터였다. 아파트 화단에 전구를 거는 모습을 보고 당장 오늘 집에 가서 트리를 꾸미자는 아이에게 아직 11월인데 벌써 트리를 꾸며야 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곧 12월이니 이제 꾸며도 되는 때라고 주장했다. 나는 평일 저녁엔 여유가 없거니와 내심 귀찮기도 하여 주말에 꾸미자며 미루었다.


지난 주말엔 아이 숲체험이다 뭐다 은근히 바빠서 트리 꾸미는 것을 아이도 나도 까먹었다. 다시 평일이 되어 아이는 트리를 꾸미자고 채근하였다. 다가오는 주말엔 꼭 꾸미자고 아이와 약속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다. 나는 대학 친구를 만나는 점심 약속이 있었다. 오전부터 집안 정리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느라 바쁘게 보내다가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히 나갔다. 나가는 나에게 아이는 물었다.

"엄마, 크리스마스 트리는?"

"숙제 끝내고 게임하고 트리 꾸며. 아빠한테 꺼내 달라고 해!"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을 먹고 서점을 둘러보고 커피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고기를 사 들고 왔다.



저녁으로 삼겹살과 목살을 먹으며 아이들이 추천한 만화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함께 봤다. 보통 아이들이 TV를 볼 때 아이들만 보게 하고 나와 남편은 함께 보지 않는데, 어제는 넷이 함께 봤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매체를 보는 시간이 아이들이 어른을 찾지 않는 자유 시간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않는 때가 많다. 그 시간에 나는 남편과 대화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낸다. 어제는 밥 먹고 바로 치우기 귀찮기도 했고 그 만화가 참신하고 재미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봤다. 만화를 다 본 다음에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남편은 큰아이를 위한 무슨 프로그램을 다운받느라 바빴다. 만화를 같이 봐줬으니 우리가 애들한테 할 일은 다 해 줬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제 씻고 자자고 하니 아이가 트리를 꾸미겠다고 했다. 이미 밤 10시가 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꾸미자고 하니 아이가 "내일은 형 역사 수업 가잖아!"라고 했다.

"아 맞다! 내일 역사 수업이지! 일찍 일어나야 되네. 그럼 더욱 빨리 자야지. 내일 오전에 엄마랑 형 없는 동안 아빠랑 트리 꾸미고 있어."라는 말에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트리는 가족이 다 같이 꾸며야지! 주말에 꾸미자고 해놓고 오늘 못 꾸몄잖아. 숙제하고 꾸미자, 게임하고 꾸미자, 양치하고 꾸미자, 아빠 이거 찾아보고 꾸미자 하며 계속 미루기만 했잖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하다. 동심이 메마르다 못해 현실에 찌든 엄마 아빠는 그깟 트리 안 꾸며도 그만, 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소중한 날이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크리스마스 당일 하루가 아니었다. 트리를 가족이 함께 꾸미며 함께 기뻐하는 일, 산타 할아버지한테 드릴 선물(아래 작년 글 참조)과 받을 선물을 고민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기간 전체가 크리스마스였던 것이다.


아이의 토로에 나는 아빠가 그렇게나 많이 미뤘냐며 (마치 나는 안 미룬 것마냥) 지금 당장 트리를 꾸미자고 했다. 남편은 "그래, 아빠가 미안하다."라며 잡동사니가 가득한 베란다에서 잡동사니를 다 꺼낸 후 가장 구석에 있던 트리를 꺼내 줬다. 남편이 트리를 거실에 설치하고 나와 아이들은 장식과 전구를 트리에 걸었다. 불을 끄고 점등식을 하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야 크리스마스지!"


낭만을 잃은 부모는 아이 덕분에 낭만 한 스푼을 얻었다.



* 작년에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께 드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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