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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an 02. 2022

장갑이 있는데 왜 끼지를 못하니

있으면 유용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장갑.

올 겨울은 어찌 된 영문이지 장갑이란 존재에 대해 아예 잊고 살았다. 

예년에 비해 덜 추웠거나 밖에 있는 시간이 적었던 탓이다.

작년에 내가 장갑을 어디에 보관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본격적으로 찾기는 귀찮으니 그냥 장갑 없이 겨울을 나기로 한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장갑을 선물했다.

정확하게는 나에게가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에게 드린 선물이지만.


[산타 노릇하기 고되다]

앞선 게시물에서와 같이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한참 고민한 바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답이 안 나오자, 아이는 아빠와 차분히 대화하고서 장갑을 사기로 결정했다.

반드시 빨간색에 하얀색이 있는 장갑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갔다. 

아이가 맘에 드는 장갑을 직접 골랐고 집에 와서 봉투에 넣고 편지도 썼다.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트리 밑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카드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트리 아래에 살포시 놓인 장갑을 잊지 않고 수거하였다.


아이는 다음 날 장갑을 산타 할아버지가 가져가신 것 같다며 좋아했다.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큰 아이는 나에게 몰래 와서 장갑 어디다 숨겼냐며 추궁하였지만 난 함구하였다.

장갑이 발각되지 않도록 난 책장 맨 위에 장갑을 올려놨는데, 며칠 전 방 정리를 하며 책장을 폐기해야 해서 장갑을 급하게 출근 가방으로 옮겼다.


장갑을 회사 서랍에 보관해야 하나?

그러기엔 뭔가 아깝다. 어쨌든 돈 내고 샀으니 누군가는 사용해야 물건이 가치를 발휘하는 건데.

게다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곁에 장갑이 있다고 생각하니 손이 더 시린 기분이다.

출퇴근 길에만 잠깐씩 낄까?

그러다 실수로 아이에게 들킨다면 큰일인데.


아니, 그러고 보니 분명히 아이가 자기 용돈으로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산다고 했는데 아이가 돈을 안 냈네!

마트 갈 때 아이가 지갑을 안 챙겨간 통에 남편이 돈을 대신 내주었다. 

집에 가면 5,900원을 꼭 달라고 신신당부하였건만,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잊어버렸다.

그럼 이 장갑은 결국 남편이 사준 되는 건가.


어찌 됐든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제법 따뜻해 보이는) 이 장갑을 어찌 하지?

아이 덕분에 즐거운 고민이 생겼다.

장갑이 있는데 왜 끼지를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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