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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11. 2021

산타 노릇 하기 고되다

10살 첫째가 두어 달 전부터 유도 심문을 했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산타가 없다는데요. 저희 반 3분의 2가 산타를 안 믿어요. 엄마아빠가 선물 놓는 거라던데요. 맞아요?"

준비되지 않은 질문이 훅 들어오자 난 당황하여 급히 화제를 돌렸다.

잘 넘어갔나 싶었지만 그 후에도 첫째는 7살 동생을 붙잡고

"규야, 넌 산타 할아버지 믿어?형은 안 믿어. 엄마아빠가 의심스러워."라고 말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동생의 동심만은 지켜달란 당부와 함께.


형바라기 둘째는 첫째가 그렇게 말하면

"응, 나도 안 믿어. 아빠가 산타지?"라고 큰소리 치지만 그건 그 때뿐이고 사실 산타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고 있다.


둘째가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두 개다. 하나는 작은 탕구리 인형이고 또 하나는 터닝메카드다. 탕구리는 회사로 주문을 해놨다. 문제는 터닝메카드가 종류가 많은데 아이가 갖고 싶은 모델이 몇 년 전 단종되었다는 것이었다. 이걸 어쩌지, 싶어 고민하다가 첫째에게 얘기했더니 다른 모델을 사주고 카드에다 상황을 설명하란다. 꽤 괜찮은 해결책인 것 같아서 부리나케 주문을 완료하였다.

큰 숙제를 해결하여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며칠 전에 둘째가 말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어린이들한테 선물을 주기만 하고 받진 못 하잖아.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내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드리고 싶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선물을 놓고 가져가시도록 할 거야."

아이의 기특한 생각에 난 감동을 받았다.

"규야,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산타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겠다."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선물 사드려야지. 근데 뭐 사지?"

"산타 할아버지는 편지 써드리면 감동 받으실 걸?"

"아니야, 그건 뭔가 특별하지 않아. 선물을 드릴 거야. 근데 뭐 사지? 생각이 안 나. 어떻게 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어떡해?"

"아직 시간 많이 남았대두."


고난의 시작이었다.

일단 그렇게 며칠을 벌었으나,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으니 나를 들들 볶을 게 뻔했다.


역시나 오늘 저녁, 둘째는 산타 선물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산타 선물 어떡해?"라고 물었다. 나는 회사로 시킨 선물들을 생각하며

"어떡하긴 뭘 어떡해?크리스마스 되면 선물 받겠지."라고 말했다.

아이는 "아니!!! 산타 할아버지한테 드릴 선물 어떡하냐고?"라며 짜증을 냈다.

"문구점에 가서 살 만한 걸 살까?" 해도 특별한 걸 사야 한다고 싫대고, 뭐 사고 싶냐고 하면 모르겠다고 하고.

남편은 토요일인데 일이 있어 출근했고 오늘따라 아이 둘이 날 많이 찾고 귀찮게 한 하루라 피곤했다. 저녁을 다 먹고 설거지는 남편에게 맡기고 책 좀 읽으며 쉬려는데 둘째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서 산타 선물로 나를 괴롭혔다.


"정 생각이 안 나면 안 드려도 돼. 그건 의무가 아니야."

"그래도 드리고 싶어. 선물 뭐 사지? 선물 어떡해?

10초 간격으로 쏟아지는 "선물 뭐 사지" 공격에 난 둘째에게 진작에 산타의 존재를 고백하지 못함을 후회했다.


속에서 부글거리는 것을 참고, 서너 마디 친절한 척 응대해 줬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저기, 규야. 고민을 저기 거실 나가서 해줄래? 아님 아빠 옆에 가서 할래?"

"싫어. 난 엄마 옆에 있을 거야."

"가서 티비 봐."

"싫어, 싫어. 선물! 선물!"

결국 난 아이 말에 답하지 않고 책을 봤다.

정세랑 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서 아이가 하도 징징대니 책 속 주인공 경민이 외계인인지 산타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내가 무응대하는 동안 아이는 같은 걱정을 반복하며 잠이 들고 말았다.


후우... 고되다.

산타 노릇 하기 참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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