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챙겼니? 가방 싸고 이제 자자."
초 3 정도 됐으면 가방은 알아서 챙겨야 할 텐데, 큰 아이 학교는 과밀 학교라 작년 1년 동안 거의 등교하질 못 했다. 올해도 1주일에 두어 번만 등교해서 등교일 전날이면 가방을 싸라고 아이에게 말해 준다.
"네. 엄마, 근데 제가 어제 글쎄, 가방을 안 챙기고 그냥 가가지고 오늘 학교에서 국어랑 사회 교과서가 없었던 거 있죠?"
아차! 이번 주부터 전면등교가 시작되었으니 매일 가방을 챙겨야 하는데 격일로 학교 가던 습관에 아이도, 나도 가방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아이는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인 양 말한다. 해맑음과 당당함이 우리 큰 아이의 큰 장점이다.
"어이구, 저런. 그래서 어떻게 했어?"
"다 방법이 있죠. 이면지에다 필기했어요."
"그래, 교과서가 없다고 우두커니 있지 않고 이면지에 필기한 건 잘 한 거야. 이면지는 어디서 구했어?"
"선생님한테 달라고 했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아이의 순발력과 문제 해결력에 칭찬을 해주었다.
고맙게도 아이는 돌발 상황에 의연하게 잘 대처해 준다.
급식용 수저를 깜빡 하고 안 싸줬을 때도
"일회용 수저 달라고 해서 먹었죠."
교정기 케이스를 안 가져간 날도
"밥 먹을 때 교정기는 휴지에 잘 싸뒀죠."라며.
"그런데 건이야, 이면지에 필기한 것까진 잘 했는데, 이면지에 쓴 내용을 국어랑 사회 교과서에 써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실수를 제대로 만회하는 건데."
이렇게 말하면서 글씨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지 않을까 약간 걱정을 했다.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져 아이가 피곤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순순히 "네, 그래야죠." 하며 책상에 앉아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밤, 실수 만회하기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