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 Nov 25. 2021

엄마가 해주는 간식의 의미

나는 13년차 주부, 10년차 엄마이다. 그러나 그 경력이 무색하리만큼 요리는 잘 못 한다. 아니, 못 한다고만 말하기엔 좀 억울한 게, 요리의 근원적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잘 안 하는 것이다. 요리는 하는 시간에 비해 먹는 시간이 너무 짧으므로 비효율의 극치이다.


내가 요리를 싫어한다고 해도 애들을 먹여 키워야 하니 아예 안 할 순 없다. 결국 정착된 방식이 제한된 메뉴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차려주는 밥은 간장계란밥, 오므라이스, 볶음밥, 유부초밥, 카레라이스, 된장찌개, 미역국, 프렌치토스트 등이다. (상기 나열한 음식은 반복 연습으로 인해 능숙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기 가장 편리하고 아이들에게 반응 좋은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구운 고기이다. 삼겹살이나 살치살이면 만족도가 최고로 올라간다.


아이들은 끼니만 해결한다고 될 게 아니다. 오후에는 간식을 먹어야 한다.

한동안 군고구마, 바나나, 꿀호떡, 요거트 등을 먹었는데 요샌 아이들이 시리얼에 꽂혀 있다. 그나마 질릴까 봐 시리얼 종류를 3종으로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만 먹여도 되나?'란 불편함과 '애들을 잘 해먹여야지.'란 의무감이 한순간에 솟구치는 시기가 오면 나는 때때로 간식을 만든다. 사실 난 어릴 때 엄마가 해준 다양한 음식과 간식을 먹으며 자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못해 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엄마는 간식을 다양하게 해주셨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군고구마부터 군만두, 샌드위치, 떡구이 등 매일 다른 간식을 주셨다. 나는 사실 집에서 간식 먹는 게 당연한 건 줄로 알아서 밖에서 뭘 사먹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컵떡볶이도 처음 사먹어 봤다.


엄마가 해주신 간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간식은 고구마맛탕이었다. 원래도 고구마를 좋아했는데 그걸 한 번 튀기고 물엿까지 입히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고구마맛탕을 만들면서 고구마를 길게 잘라 바삭하게 튀겨서 고구마과자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두 간식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우리 애들도 외할머니표 고구마맛탕을 아주 좋아한다. 갑자기 애들에게 고구마맛탕을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고구마를 샀다. 난 오랜만에 야심차게 간식 만들기에 돌입했다.


유치원에 다녀온 둘째 아이가 배고프다며 시리얼을 달란다.

"기다려 봐. 엄마가 맛있는 고구마맛탕 해줄게."

 

고구마를 씻어 껍질을 까고 칼로 자르려는데, 와! 이 고구마는 왜 이리 단단한가? 칼이 잘 안 들어간다. 난 단전에 기를 모으고 칼을 눌렀다. 주황빛 호박고구마였는데 원래 안 익힌 고구마는 이렇게 단단한 것인지? 나는 거의 수련하는 심정으로 칼질을 했다.


"언제 돼? 나 배고프단 말야."

"어어. 금방 돼. 다 잘랐으니까 이제 튀기고 올리고당 묻히면 돼."


마음이 급했다.

사각썰기한 고구마를 기름에 넣어 튀겼다. 언제 다 익는지 알 수 없어서 서너 개를 집어 먹었다. 고구마가 말랑해지자 다른 팬에다 올리고당을 넣고 묻혀 주었다.

예전에 설탕을 녹여 고구마맛탕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딱딱하여 아이들이 안 먹었다. 친정 엄마에게 비결을 물어보니 올리고당만 넣으면 말랑하다고 하였다.


부랴부랴 완성하여 둘째 아이에게 주었다.

"어때?"

"음... 외할머니 거랑 다르네. 엄마, 외할머니한테 좀 배우는 게 어때?"

"아 왜? 외할머니한테 배웠단 말야."

"배운 거 맞아? 근데 맛이 다르단 말이지."

"그냥 먹어!"

"알았어. 이것도 맛은 있어."


학원 간 첫째 아이에게 고구마맛탕 해줄 터이니 간식 사먹지 말고 집에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다시금 단전호흡 및 칼질 수련을 하고 고구마맛탕을 만들었다. 그 사이 첫째 아이가 집에 왔다.

"간식 주세요!"

"자, 여기."

"어? 할머니 거랑 맛이 다르네. 난 안 먹을래. 난 냉동 블루베리나 먹어야지."

"왜? 더 먹어봐. 맛있게 됐는데 왜?"


남은 고구마맛탕은 다 내 몫이 되었다.

 

'엄마가 해주는 간식의 의미' 그런 거 없다.

우리 집 간식은 다시 시리얼로 통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초딩이 노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