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 Nov 17. 2021

요즘 초딩이 노는 법

우리 큰아이 학교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 시에는 줌(Zoom)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는데 1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우리 아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줌 사용 초창기에 큰 아이는 나에게 회의실을 개설한 후 호스트를 자기에게 넘겨 달라고 했다. 아이가 선생님이고 내가 학생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이 온라인 수업을 하듯이 교과서 화면을 띄우고 화면에 메모를 하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줌에 있는 새로운 기능을 익히느라 교과 내용 설명은 늘 뒷전이었다.


올해 2학기부터는 아이가 직접 줌 회의실을 개설하고 서너 명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논다.

아이 반에서 책 만들기가 유행할 때는 줌을 틀어놓고 아이들이 각자 책을 만들기도 했고, 포켓몬 카드 언박싱을 하기도 했다.

"와, 대박! 엄청 좋은 카드가 나왔어. 이거 봐."

"와! 좋겠다. 내일 학교에 가져와서 보여줘."

마피아 게임도 한다. 호스트인 우리 아이가 마피아와 시민, 의사 등을 지정해 주고 게임을 진행한다.  

어떨 땐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갑자기 리코더를 불기도 하고 각자 자유롭게 간식 갖고 와서 먹으면서 논다.

난 왔다 갔다 하면서 봐도 '저게 재미있나?'란 의구심이 든다.


집합 금지 명령 기간이 꽤 길었을 때 나도 친구들과 화상으로 맥주 한 잔 하며 수다를 떨려고 시도해 봤으나, 역시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자꾸 '내 얼굴 왜 저래? 잡티가... 팔자 주름이...'란 생각이 들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맥주 한 캔을 따서 두어 모금밖에 못 마시고 화상 약속은 종료되었다.

 



오늘 아이가 하굣길에 전화를 했다.

"엄마, 저 끝났는데요. 윤이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아도 돼요?"

"응, 그래. 알았어."


윤이라는 여자 친구는 아이와 같은 반이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다.

초 3 쯤 되면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윤이는 항상 하굣길에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를 비롯한 남자 친구들 3~4명과 같이 논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말한다.

"오늘은 놀이터에서 안 놀고 온오프라인 모임을 하기로 했어요."

윤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가방은 여기 둬도 될까요?"라고 하고 아이 방에 가방을 놨다.


"요구르트 하나씩 마셔."

나는 요구르트를 건네주며 둘이 뭐 하나 봤다. 둘은 방에서 각자 만화책을 본다.  

나는 또다시 의아했다. '저게 같이 노는 건가?'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아, 미안. 빨리 줌 열게."

온오프라인 모임을 연다더니 줌 회의실 여는 것을 깜빡했나 보다.

아이는 줌 회의실을 열고 친구 2명을 초대했다.

그러는 사이 윤이는 나와서 기웃대더니 껌을 가리키며

"하나 먹어도 될까요?" 한다.


아이 방에는 의자가 하나라 줌으로 같이 놀려면 의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

우리 아이는 윤이가 서 있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의자에 턱 하니 앉아 있다.

윤이가 또 나와서 "의자를 가져가도 될까요?" 하며 의자를 들려고 한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그 의자가 무거워서 들기 힘들 거야. 내가 들어다 줄게."라고 하며 방으로 옮겨 주었다. 우리 아이는 윤이가 의자를 갖고 오든 말든 쳐다도 안 본다.

(남자친구였다면 아주 꽝인 매너다.)


둘은 줌에 들어온 두 명의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보다가 한다.

"엄마, 배고파요. 시리얼 먹을래요."

"그래. 윤이도 시리얼 먹을래?"

"음... 집에 뭐가 있어요?"

"콘푸라이트와 첵스 초코, 첵스 초코 레인보우가 있어."

"다른 건 없어요? 아이스크림 있어요?"

"아이스크림은 티코가 있는데, 먹을래?"

"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면서 자기 의견이 확실한 친구다.  


그렇게 둘은 간식을 먹으며 책을 보며 줌에 들어온 친구들한테 몇 마디 말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 학원 시간이 되어 집을 나섰다. 윤이는 집을 나서며 나에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우리 아이에게는 "아, 오늘 진짜 재미있게 놀았다."라고 말했다.


어떤 부분에서 재미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즐거웠다면 뭐.

매거진의 이전글 신중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출력 오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