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 Nov 14. 2021

신중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출력 오류

작은 아이가 바둑학원을 지날 때마다 바둑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여 체험 수업을 갔다.

바둑 선생님은 바둑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기 위해 아이에게 물었다.

"보드게임이나 체스 같은 거 해봤니?"

"네."

"그래. 체스는 어떤 게임이야?"

"체스는...... 체크 메이트.........."

"어. 그래. 체크 나이트!"

아이는 체스를 할 줄은 알지만 체스의 정의나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질 못 하는 데다가 바둑 선생님이 체크 메이트를 체크 나이트라고 말하자 더욱 당황하여 입을 아예 다물어 버렸다.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 봐. 체스에선 어떻게 하면 이기지?"

왕을 잡으면 이기는 경기라고 하면 될 텐데 아이는 쉽게 말하지 못 했다.

선생님과 나는 아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르겠다는 말도 못 하겠고 엄마한테 도와달라는 눈빛도 못 보내겠는지 눈물 맺힌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며

"이거 시험 보는 거 아니야. 틀려도 되고 모르겠다고 해도 돼."라고 말해줬다.


그 후에 체험 수업을 다 하고서 나는 선생님께 일단 아이와 어땠는지 얘길 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기로 하고 나왔다.

아이는 학원을 나오자마자 묻는다.

"나랑 뭘 얘기해? 나 언제부터 바둑 수업 가?"

처음이라 긴장됐지만 수업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집에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통로에 사시는 아주머니(아이가 보기엔 할머니)를 만났다.

"엄마랑 어디 갔다 와? 형은 집에 있어? 형 혼자 집에 있어?"

아이의 얼굴을 보니 고민하는 눈빛이다.

일단 질문도 많았고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못 하고 정적이 흘렀다. 무안해진 아주머니는 대답 없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형은 태권도 갔나?"

아이는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쉬웠는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주말인데요!"

"아, 오늘 주말이라 태권도 안 가는구나. 미안해. 할머니가 몰랐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아이는

"네. 안녕히 가세요."라고 대답하며 홀연히 내렸다.


아이에게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이것저것 사실 관계를 다 따져서 대답하려다 보니 대답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내가 유추한 아이의 사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