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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0. 2021

선택 연습

하고 싶은데 하기 싫어

큰 아이는 결정이 빠른 편이다.

먹고 싶은 간식을 정할 때도, 학원을 다닐지 말지 정할 때도 시원하게 결정한다.

결정하고 나서 후회도 없다. 다른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 양 미련을 보이지 않는다.


큰 아이가 올해 생일에 아이스크림 케익을 사달라고 했다.

본인이 맘에 드는 걸 사고 싶다고 하여 내가 아이스크림 집에 가서 케익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고르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케익 6개를 사진 찍어 문자로 전송해 줬는데 부연설명할 새도 없이 바로 답문이 왔다.

3번

전화를 걸어서 다시 물어봤다.

"3번 고른 거 맞아? 캠핑 모양 케익?"

"어. 3번."

그렇게 고르고선 본인이 잘 골랐다며 대만족이다.


작은 아이는 결정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대단한 결정이 아닌데도 일상의 선택을 어려워한다.

작은 아이가 너댓살 때 많이 하던 말이 "하고 싶은데 하기 싫어."였다.

사람 환장하게 하는 말이다.

나도 큰 아이와 비슷하게 결정이 빠른 편이라 작은 아이가 뭘 결정하지 못하면 이해가 안 가다 못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쇼핑몰에서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행사가 있었다.

큰 아이는 후다닥 사진 찍고 이미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는 징징댔다.

"사진 찍기 싫어."

"그래. 사진 찍기 싫으면 안 찍어도 돼."

"사진 찍고 싶어."

"그래, 그럼 사진 찍으러 가자."

"사진 찍고는 싶은데... 아, 몰라. 모르겠어."

"사진을 찍고 싶어, 안 찍고 싶어? 안 찍고 싶으면 안 찍어도 돼."

"사진 찍고 싶은데 안 찍고 싶어."

그게 무슨 말이람? 나는 화가 너무 치밀어 올라서 아이한테

"넌 찍지 마!"라고 큰 소릴 쳤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남편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아이를 살살 달래서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말이 빨라서 이미 3살부터 하고 싶은 말을 조잘조잘 잘 하던 아이라 의사표현을 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기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때는 그게 언어로 표현이 안 됐던 듯하다.

그래서

"가고 싶은데 가기 싫어."

"먹기 싫은데 먹고도 싶어."와 같은 열뻗치는 기술을 종종 시전하였다.


작은 아이가 좀 커서 예닐곱살 쯤 되니 그나마 '하고 싶은데 하기 싫다'는 모순 화법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는 여전히 선택을 어려워 한다.


작년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 먹자고 했다.

작은 아이는 휴게소가 처음이었다. 사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여행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아이가 더 어릴 때 갔던지라 아이는 기억을 하지 못 했다.

어쨌든 휴게소에서 간식을 고르라고 했더니 큰 아이는 바로

"난 소시지!"

하고 외쳤다.

너무 금방 골랐길래 간식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데 구경을 좀더 해보고 고르라고 했지만 큰 아이는 됐다며, 소시지를 사달란다.


작은 아이에게 통감자, 소시지, 핫도그 등등을 보여주고 먹고 싶은 간식을 고르라고 했더니 아이는 말했다.

"아, 몰라. 모르겠어."

"규야. 자, 봐봐. 형아는 소시지를 골랐네. 형아랑 똑같이 소시지를 먹어도 되고 규가 좋아하는 핫도그를 먹어도 되지."

"아이, 그래도 모르겠어."

"간식이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돼."

"먹고는 싶은데 뭐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

"네가 고르기 힘들면 엄마가 골라주는 거 그냥 먹어. 소시지 먹어. 알았지?"

"싫어. 소시지 싫어!"

"그럼 뭐 먹어?"

"몰라. 배는 고픈데 뭐 먹을지는 몰라."

친절하게 설명하던 나의 인내심이 폭발하였다.

"그냥 먹지 마!"

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이 아이가 대체 왜 이러는지 도저히 모르겠기에 나도 같이 울고 싶어졌다.

남편은 그나마 우유부단한 아이와 통하는 부분이 있는지 작은 아이를 안고 다시 한 번 간식거리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작은 아이가 사온 간식은 바로

소.시.지.     

소시지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아까 형이 골랐을 때 같이 골랐으면 됐잖아. 엄마가 사라고 할 때 샀으면 됐잖아. 아까 그 소시지랑 지금 이 소시지랑 도대체 뭐가 다른 건데?'

마음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남편한테 물었다.

"어떻게 해준 거야?"

"규는 선택할 거리가 너무 많으면 힘들어 하는 거 같아서 소거법으로 하나씩 빼줬지. 이거는 이래서 빼고 저거는 저래서 빼고. 그랬더니 소시지를 고르게 된 거야."


작은 아이는 선택의 경험을 쌓은 덕에 올해 휴게소에 가서는 소시지를 사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선택지가 많고 넓은 질문에 작은 아이는 여전히 답하기 힘들어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블럭으로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먹고 싶은 간식을 물어볼 때도  

"집에 가서 간식 먹을래? 상가 가서 빵이나 떡 사먹을래?"

처럼 선택 범위를 넓혀서 물어보면 힘들어 한다.


빵집에서 빵 구경을 한 바퀴 하고나서 하는 말은 여전히

"아이, 나 뭐 먹고 싶은지 모르겠어."이지만

"저번에 고로케 잘 먹던데 고로케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응, 나 고로케 좋아해! 맛있어. 우유는 내가 고를게."라고 조금씩 선택을 해본다.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선택해야 되는 순간은 무수히 많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아이가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선택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

(아무래도 남편이 담당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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