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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an 06. 2022

아이에게 욕을 가르치다

키즈폰 욕설 금지 기능

초3 큰 아이는 키즈폰을 사용한다.

아이는 스마트폰을 사달라 노랠 하지만 아직은 안 사주고 버티고 있다.


아이는 그나마 키즈폰에 깔아 둔 카카오톡으로 스마트폰의 기분을 살짝 느껴본다. 

키즈폰 카톡은 제한이 많다.

먼저 동영상 발송 및 수신이 안 되고, 사진 묶어 보내기와 묶어 받기 기능이 안 된다. 이모티콘도 기본 이모티콘만 쓸 수 있고 사거나 선물할 수 없다.


그리고 욕설 금지 기능이 있다.

아이도, 나도 그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 아이가 보낸 카톡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아** 일을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퇴근해서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아이는 씩씩대며 말했다.

"아니, 아빠가 라고 썼는데 아빠가가 안 나와요. 별별로 나와! 빠가가 뭐예요?"


아...

이걸 어쩌지?


"그게.. 빠가가 일본어로 바보라는 뜻이라서 그렇게 나오나 보다. 안 좋은 말을 쓰면 안 되는 건 맞지만 아빠가 라는 말을 못 쓰는 건 너무 한데?"

"그러니깐요!!!"

"요새 카톡, 특히 단톡방에서 욕을 쓰고 친구를 괴롭히는 일들이 생긴대. 그래서 저렇게 제한하나 봐."

"저는 친구들한테 욕 쓰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친구들도 모두 욕을 안 쓰기로 다짐했어요."


순조롭게 잘 넘어갔나 싶었는데..

며칠 전 7살 작은 아이가 형 핸드폰으로 놀고 있었다.

카톡에다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을 치며, 한글 자음을 숙지한 예비 초딩의 위엄을 드러내는 순간!


ㄱㄴㄷㄹㅁ**ㅇㅈㅊㅋㅌㅍㅎ

"아 뭐야! 비읍 시옷이 왜 별별로 나와?"


큰 아이도 득달같이 달려와 "비읍 시옷이 욕이야? 왜 욕이야?"라고 갸우뚱했다.


두 아이는 나에게 그게 왜 욕이냐고 물었다.

아놔...

이걸 어째?

설명해야 하나 넘어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설명하기로 했다.


"욕은 쓰면 안 되지만, 또 욕을 들었을 때 안 좋은 말인지 알긴 해야 하니까 알려줄게. 이번에 듣기만 하고 절대 쓰지 마. 너희들 병신이란 말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병 병, 몸 신. 즉, 아픈 몸이란 뜻인데 몸이 불편한 사람을 안 좋게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안 좋게 부르고 싶은 사람한테 욕으로 부르는 말이야. 근데 병신이라고 쓰면 너무 욕인 게 티가 나니까 ㅂㅅ으로 쓰는 사람들이 생긴 거야. 그래서 카톡에서 별별로 나오나 보다."


아이들은 별 동요 없이 "아, 그렇구나." 했다.


아이들에게 욕을 설명하고서 나는 이게 맞나 싶었다.

나조차도 써본 적 없는 '병신'이란 말을 아이들 앞에서 내뱉자니 부끄러웠다.

('븅신'이란 말은 써봤음을 고백한다.)


욕설 제한 기능이 없었다면 차라리 몰랐을 욕을 욕설 제한 기능으로 인해 배우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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