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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an 22. 2022

엄마는 다 알고 있다

퇴근하고 있는데 큰 아이가 전화했다.

"엄마 어디예요?"

"응, 엄마 거의 다 왔어."

"엄마, 우리 아파트 1층 오면 전화해 주세요."

"너희들 뭘 하고 있길래? 또 지난번처럼 몰래 게임하니?"

"아니에요! 이제 진짜 몰래 게임 안 한다고요. 하여간 1층 오면 전화해요."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에게 허락해준 게임 데이이다. 아이들은 숙제를 한 후에 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평일이라고 게임 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동자는 큰 아이다. 큰 아이가 먼저 나쁜 짓(?)을 시작하면 작은 아이는 구경하다가 참여한다.

한 번은 평일에 노트북으로 게임하다가 걸리고 또 한 번은 핸드폰 공기계로 게임하다가 걸렸다. 사실 한 번이 한 번이 아니었다.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큰 아이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지속되었으나 못 본 척해주었다. 작은 아이는 거짓말을 잘 못해서 나에게 형이랑 자기가 요즘 몰래 게임을 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몇 번을 봐주다가 현장을 급습(?)하여 행동을 중단시키면 큰 아이는 사과하며 말했다.

"엄마, 다신 안 할게요. 그런데 제가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잘 깔았죠?"

또는

"엄마, 이제 안 그럴게요. 그런데 핸드폰 잘 찾긴 했죠?"

결국, 해맑고 태연한 큰 아이의 모습에 웃게 된다.


재작년 연말즘엔 아이들이 IPTV에 있는 게임을 하겠답시고 현금 결제를 30만 원 한 적도 있다. 나는 최신 방송 볼 때 결제하는 천 원이 아까워서 3주 전 방송만 보는데 30만 원이라니 이것들이!

현금 결제 시 남편에게 문자가 가는데 남편이 마침 너무 바빠서 이 사태를 바로 인지하지 못했고 다음 날 SK 고객센터에 전화했으나 결제 후 게임에서 쓴 금액은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하여 20만 원은 고스란히 내고 약 10만 원 정도를 환불받았다. 큰 사건이었다.

아이들에게 20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설명하고 다시는 유료 결제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고 BTV 비밀번호를 바꾸고서야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20만 원 생각을 하면 한동안 속이 쓰렸다.


어쨌든 1층에 오면 전화하기로 했으나 아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뒤늦게 전화해 주기로 한 생각이 났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전화를 걸면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이들이 후다닥 뛰어나와 나를 맞이해 줬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유달리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의심스럽다. 그러나 일단 넘어가 주었다.


며칠이 지난 주말, 밥을 먹다가 큰 아이가 게임 유튜버 타키 얘길 꺼낸다.

작은 아이가 황급히 "형! 그 얘길 하면 어떡해?" 한다.

큰 아이는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옛날에 본 거예요. 옛날에 봤던 게 너무 재미있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어요." 한다.


아, 이번엔 게임이 아니라 유튜브구나.


몇 년 전에는 아이들이 TV로 유튜브를 많이 봤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시력이 나빠지느니 TV로 보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허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 주제가 게임으로 바뀌기 시작할 때 나는 유튜브 시청을 금지했다. 게임 관련 영상은 무궁무진하여 어떤 영상이 나올지 모른다. 험한 말이 많이 나오는 영상도 많다. 어차피 흔한 남매, 밍꼬발랄, 에그박사 등 유튜브 채널이 TV에서도 방영되고 그나마 TV 방송은 비속어 제한이 약간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TV와 큰 아이 노트북에 있는 유튜브를 제한했다.


그러나 유튜브 제한을 푸는 방법을 어찌 알았는지 아이들이 TV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음.. 엄마한테 1층 오면 전화하라고 하더니 유튜브를 보느라 그랬구나."

"하아, 이게 인생이구나! 너... 비밀인데 얘기하면 어떡해?"

형은 동생을 보며 눈을 흘긴다.

"아니... 형이 먼저 타키 얘기했잖아."

나는 큰 비밀을 밝히는 듯 넌지시 말했다.

"얘들아, 사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어. 너희가 말 안 해도 엄마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도 어릴 적 엄마한테 이 얘기를 많이 들었다.

"너희 뭐 사 먹고 왔지? 엄만 다 알고 있어."

혹은

"너희 엄마한테 뭐 비밀 있지? 엄만 다 알고 있어."

엄마가 다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모든 이야기를 엄마에게 술술 불어 버리고 마음이 홀가분해지곤 했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가 다 알고 있단 말에 사실을 고백하였다. 유튜브 키즈에서 뭘 봤고요 뭘 봤고요.

"그래, 그랬구나. 근데 게임 영상을 보다 보면 연관된 영상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중에 나쁜 말 쓰고 안 좋은 영상도 있단 말이야. 그래서 엄마가 유튜브 보지 말라고 한 거야."

"죄송해요."


그리고 계속 점심을 먹는데 작은 아이가 묻는다.

"그래서 엄마?"

"응?"

"그래서 엄마, 어떻게 ?"

"그럼 평일에 1주일에 한 번은 유튜브를 보는 걸로 하자. 대신, 게임 영상은 말고. 다른 영상을 봐."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큰 아이가 외친다.

"뜻밖의 개이득!"

"형, 게이드가 뭐야?" 작은 아이는 궁금해한다. "게이드가 뭐냐고? 뜻빠께 게이드가 뭐야?"

아이 둘의 말에 일순간 심각한 분위기가 풀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막을 생각은 없다. 또한 아이들에게 어른 말을 무조건 잘 들으며 착하게 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의 창의력 계발을 위해선 어른의 강한 컨트롤이 금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한 통제나 세세한 규칙 설정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게임이나 유튜브를 막는다 한들 언젠가는 다 접하고 누릴 매체이기도 하고. 그러나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아이들이 빠르게 소모되는 컨텐츠보다는 천천히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놀이나 책을 즐겼으면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적당히 이끌어 주기가 쉽지 않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조용해서 가보니 둘이 속닥속닥 하면서 노트북에 몰래 깔아 둔 게임을 지우고 있다. 엄마가 다 안다니까 긴장했나? 어릴 적부터 조용하면 사고 치더라니.. 이번엔 조용히 사고를 수습하네.

어릴 적, 조용하면 사고 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맨 위부터) 동아사이언스,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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