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나오는 겨울이면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있다. 바로 보아의 'メリクリ(메리크리)'이다. 장범준에게 '벚꽃 연금'이 있다면 보아에게는 'メリクリ(메리크리)'가 겨울 연금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을 동시에 발매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노래를 일본어로 처음 접했기 때문에 일본어 버전이 더 친숙하다. '메리크리'를 처음 들은 건 노래방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유니를 처음 만난 건 중 3 겨울방학 영어 단기 연수에서였다. 유니는 내가 동갑이란 걸 알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고등학교 올라가야 하는데 공부 안 하고 여기 온 걸 보니 너 공부 포기했구나? 나돈데."
영어 공부도 공부 아닌가? 큰맘 먹고 영어 공부하러 온 건데 공부를 포기했냐니. 나는 뽀얗고 예쁘장하게 생긴 유니랑 친해지고 싶었지만, 유니가 던진 말 때문에 유니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라 생각하고 해외에 처음으로 나온 나와는 달리, 유니는 벌써 여러 번 해외 연수를 경험한 상태였다. 나는 초콜릿바 자판기를 난생처음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유니는 "와! 밀키바다. 이거 우리 언니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말하였다. 유니의 말에 과시욕이나 악의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우리의 경험치가 다를 뿐이었다.
세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유니는 재미있고 따뜻한 친구였다. 연수 온 사람들 중에 동갑내기가 얼마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태지를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유니와 나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유니는 책과 영화도 아주 좋아했다. 그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좋아한다'는 책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보는 정도였는데 유니의 열정은 남달랐다. 책의 번역이 이상한 부분을 체크하여 출판사에 항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수첩에 꼬박꼬박 별점평을 남겼다. 그때 유니가 꼭 봐야 한다고 추천해준 '마농의 샘'은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비디오로 봤고 '길버트 그레이프'는 아직까지 못 봤다.
우리는 어떤 날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또 어떤 날은 불평불만을 쏟아내면서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이 끝날 무렵 잔디에 누워 별을 보며 우린 얘기했다.
"한국 가기 싫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오리온자리(이미지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유니는 대구, 나는 서울 집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 나갔다. 우리의 편지에는 공부하기 싫은 마음, 하고 싶은 걸 못하는 답답함, 학교와 독서실에 억눌려 있어야 하는 괴로움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니는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공부를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서로에게 자신의 성적을 공개한 적은 없었는데,난 문득문득 불안했다. 나중에 대학 갈 때 우리의 우정이 깨질 것만 같았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성적이 유니한테 많이 뒤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니를 경쟁 상대로 여기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유니를 경쟁 상대로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어둡고 긴 터널 같던 고등학교 시절이 끝나고 수능 시험을 봤다. 유니의 수능 점수는 나보다 1점인가 2점이 높았다. 유니는 내가 지원한 학교와 그 학교보다 성적이 높은 다른 학교 중에 고민하다가 다른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우리 둘 다 대학에 합격하여 지긋지긋한 입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니는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시작했다. 같은 서울 하늘에 있게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외롭고 재미없는 대학 생활에 대해 토로하고 유니는 단체 생활에서의 겉도는 불편함에 대해 얘기했다. 이래저래 불평 투성이 편지였지만, 우리는 편지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유니는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본인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애증의 연애'를 하면서도, 연애를 못하는 나에게 "그러길래 남녀공학을 갔어야지. 왜 여대를 갔어?"라며 연애를 권장하였다. 유니는 적극적으로 소개팅 주선을 해주며 쾌활하게 말했다. "내가 너 남자 친구 꼭 만들어줄 거야. 너 연애하면 우리 더블데이트하자!"
나는 유니가 좋았지만 유니를 만나는 날은 부담이 되었다. 부잣집 딸내미 유니의 씀씀이는 나와 많이 달랐다. 만남의 장소는 유니가 편한 곳으로 정했다. 나는 유니의 학교 앞이나 유니의 집 앞으로 갔다. 어차피 우리 집에선 어딜 가나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나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아 기꺼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유니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이끌고 간 식당은 대개 값이 비쌌다. 유니가 주로 밥을 샀다. 더치페이로 나누기엔 내 용돈 범위를 벗어난 금액이었다. 밥을 먹은 후 카페나 노래방에 가면 내가 돈을 냈지만 밥값에 미치지 못했다. 디저트 값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내 딴엔 큰돈을 썼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우리 만남의 끝엔 대부분 유니를 만나러 온 남자 친구가 있었다. 유니가 분명히 방금 전까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건만,막상 당사자가 나타나면 꼭 만나주는 것이었다. 내 친구랑 헤어졌거나, 헤어질 예정인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돌아서는 기분은 왠지 싱숭생숭했다.
유니는 7년 넘게 애증의 연애를 했던 남자와 끝내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나는 유니 결혼식을 보러 대구에도 가고, 내 결혼식을 보러 유니도 서울에 왔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소원해졌다.
예전에 유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 주변에는 자신의 돈을 뜯어먹으려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고. 무슨 자리만 있으면 다 자기가 사고,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돈을 안 내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쉽게 생각했으나,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유니는 야무지고 세게 보이려고 행동했지만, 사실 싫은 소리를 못하고 무른 이미지에 가까웠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싫으면 싫다, 안 되면 안 된다 딱 잘라 말하라고 유니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한편 나 역시 유니의 돈을 뜯어먹는 사람인가 잠시 고민했다. 우리는 잘 통하지만 다만 경제 수준이 달라서 유니가 돈을 더 쓰는 것뿐이라고, 나는 돈을 적게 쓰지만 유니에게 든든한 친구라고 믿었는데, 유니가 보기엔 나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이었던 걸까.
그 시절 유니와 나는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했다. 서로 노래를 잘한다고 추켜 올려주며 노래를 부르다가 나중에는 하도 많이 가다 보니 칭찬을 생략하고 각자 하고 싶은 노래만 불렀다. 가요나 팝송만 선곡하던 유니가 어느 날 일본어 노래를 선곡했다. 바로 보아의 'メリクリ(메리크리)'였다.
"어? 너 일본어 모르잖아."라는 내 말에 유니는 "어, 몰라. 모르고 부르는 거야. 일본어 가사 한글로 나오잖아."라고 말했다. 맑고 깨끗한 유니의 목소리가 이 노래와 잘 어울렸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마음속에서 오랜만에 경쟁의식이 생겼다. '일본어를 모르는 유니도 이 노랠 부르는데, 나는 이 노래를 필히 외워서 불러야겠어.' 나는 집에 와서 '메리크리' 가사를 보며 수십 번 연습했다.
유니에 대한 내 마음은 순수한 우정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동경과 질투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유니는 내가 한때 많이 좋아하고 의지했던 친구다.
"후따리노 쿄리가 스고꾸 치지맛따 키모치가 시따.(두 사람의 거리가 굉장히 줄어든 기분이 들었어.)"
코끝이 시려지니 유니가 부르는 "메리크리'가 듣고 싶다. 나한텐 보아보다 유니 네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