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연애가 아니었어 (6)

by JOO

그날도 동전을 두둑이 모아 공중전화에 가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내가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모아 놓은 동전이 무색하게 짧은 통화였다.


금방 전화가 다시 오려나 싶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을 배회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계신 집보단 밖이 통화하기 편했으니까. 동네를 돌고 돌아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켰다. 그는 방에 있을 땐 항상 컴퓨터 메신저를 켜놨었다.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답이 없었고 이내 오프라인으로 상태가 바뀌었다.


전화를 하니 신호는 가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내 앞에서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하던 그의 모습이 선했다.

'내 전화를 받기 싫어서 배터리를 뺐겠구나.'


그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끝이었다.

아주 비겁한 이별이었다.


끝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다 못해 시원하게 차이는 사건이라도 있었어야 술을 퍼마시든지 엉엉 울든지 할 텐데 '이게 끝이 맞나?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 기다리다 보면 연락이 오겠지.'란 생각이 드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끝이 맞다면 원인이 뭘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와의 직전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로 하여 강남역 씨티극장에 갔는데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매표소 줄이 끝도 없었다. 나는 연휴에 극장에 가본 게 처음이라 연휴에 영화를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보아하니 그도 사람이 이리 많을 줄은 예상치 못 했던 것 같다.

그는 "예매를 했어야지."라고 살짝 짜증 섞인 말을 했던 것 같다.

'아, 예매! 예매 생각을 못 했네. 아니, 근데 너도 예매 안 했잖아.'라고 속으로 생각했으나,

"삼성 코엑스몰로 가자. 메가박스는 영화관이 많으니까 여기보다 나을 거야."라며 그를 달래어 삼성역으로 갔다.

삼성역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줄을 서다가 결국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 딱히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좀 있으면 엑스맨 개봉하거든. 다음에 엑스맨 보자."

그가 말했다.

"엑스맨? 엑스맨이 뭐야?"

"만화 원작을 영화로 제작한 건데 돌연변이가 (어쩌고 저쩌고)..."

그리 관심이 가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보는 영화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음에 같이 보기로 했다.


마지막 만남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만남 이후에도, 연락이 끊기는 날까지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럼 대체 이유가 뭘까?

직전 만남에서 내가 영화를 예매하지 않아서였을까?

내가 뭔가 말실수를 한 걸까?

내 옷이 문제였을까?

내 얼굴에 난 뾰루지가 거슬렸을까?

내가 공중전화에서 전화 거는 게 구질구질했을까?

알 수 없었다.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싫어졌으면 싫어졌다고 말해. 다른 여자가 생겼으면 그렇다고 말해."

아, 정말 신파극에 나오는 대사같은 말을 던지면서도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내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면 정리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다. 음성메시지든 문자메시지든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맘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고 그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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