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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04. 2023

미니멀리즘 추구하기가 이리도 어렵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고 싶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그런 막연한 소망이 있었다. 적은 물건으로 살고 싶은 건지, 깔끔하게 정리된 환경에서 살고 싶은 건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엔 잡동사니가 많고 나는 정리에 능숙하지 못하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려면 우선 비워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일단 옷장부터 비우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회사가 복장 자율화를 시행하면서 정장 느낌의 옷이 필요 없어졌다. 각종 재킷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짧은 치마를 버렸다. 2007년 입사 무렵, 2009년 결혼 무렵 샀던 원피스는 다 비싸게 산 것들이라 아까웠지만, 유행도 지났고 나의 체형에도 다소 변화가 있어 입지 못할 것 같아 버렸다. 그 이후에 산 원피스 몇 벌은 결혼식을 비롯해 공식적인 행사에 필요할까 싶어 놔뒀다. 이 역시 지금 입기는 묘하게 촌스러워 입을지는 의문이지만. 도대체 패션에는 왜 유행이란 게 있을까? 패션업계가 들으면 발칙한 소리라고 발끈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유행이 싫다. 유행이 갔다고 말짱한 옷을 버리고 유행에 맞는 옷을 사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며 환경을 해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옷을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깨끗하고 상태는 좋지만 유행이 가버린 이 옷이 과연 누군가에게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장을 싹 비울 만큼 정리하지 못하고 야금야금 조금씩 비웠다. 솔직히 ‘언젠가는 다시 입지 않을까?’라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옷장을 비우지는 못했다. 언젠가 필요할까 봐 보관하지만, 어떤 옷이 있는지 정확히 몰라서 필요한 시점이 되어도 입지 못하는 웃픈 상황을 몇 번 겪고 나서 옷장을 조금 더 비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패션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이다. 타인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큰 관심이 없으며,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태껏 살면서 뇌리에 확 박혔던 옷이라곤 20여 년 전 ‘옷부심’이 있던 첫사랑이 입었던 초록색 니트에 하얀 반바지 정도다. 그때 내 주변엔 그런 조합으로 옷 입는 사람이 없어서 눈에 확 들어왔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고 싶다. 옷이 사람의 가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처럼 목폴라에 청바지만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외적인 것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일 의사가 없다. 옷이란 적당히 편하고 깔끔하게만 입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저렴한 티셔츠와 청바지 두세 개로 돌려 입으면 되고, 니트류는 몇 년 전에 친정엄마가 준 것으로 버틸 수 있다. 출근하는 날이나 쉬는 날이나 복장이 같으므로 옷이 많을 필요가 없다. 이제 웬만하면 옷을 사지 않을 것이다. 티셔츠가 해어지면 저렴한 티셔츠 몇 벌만 사면 된다. 나 이제 진짜 미니멀리즘 추구할 거야!



그러나 이 길마저 순탄치가 않다. 친정엄마는 이거 진짜 싸게 샀다며, 또는 여러 개 산 것 중에 하나 준다며, 엄마가 입으려고 샀는데 안 맞는다며 수시로 옷을 건넸다. 아낌없이 자꾸 주는 우리 엄마. 내가 입고 오는 옷이 초라해 보였나? “가져가도 나 안 입을 것 같은데.”라고 얘기해도 옷 나눔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니트와 코트와 경량 패딩, 바람막이 잠바와 신발, 기타 등등이 내게 전해졌다. 내 동생이 몇 번 입다가 입지 않게 된, 예쁘고 괜찮은 옷 또한 일단 엄마를 거쳐 어김없이 나에게 오곤 했다.

내눈엔 그거인 코트와 패딩류


아아, 좋은 것은 나누고자 하는 엄마의 배려인가, 후줄근해 보이는 딸의 심폐소생 프로젝트인가.



내 옷장은 비우기가 무섭게 다시 옷으로 찼다. 막상 얻어오면 또 잘 입기는 했지만, 더는 옷을 늘리고 싶지 않아 “엄마, 제발 옷 주지 마. 나 엄마가 주는 옷 갖고 있다가 나중에 다 버려.”라고 강력하게 얘기했다. 엄마는 “얼마 전 명절에 줬던 니트, 좋은 건데 설마 버렸어? 버릴 거면 도로 갖고 와.”라고 응수하였다. 그 덕에 나는 옷장 대정리를 하고 또 한 차례 버릴 옷을 추려냈다. 그러나 옷장을 다 뒤집어 엎었음에도 그 니트는 보이지 않아 엄마에게 돌려주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추석에 원피스를 엄마에게 받아 왔는데(원 출처: 동생 옷장), 갑자기 시댁 식구들과 가족 사진을 찍게 되어 그 원피스를 요긴하게 잘 입었다. 엄마한테 그 옷을 받아올 때만 해도 ‘이젠 결혼식 갈 일도 없고, 동네에서 이 옷을 입을 일이 과연 있겠나?’ 싶었는데, 그 원피스가 나를 살린 셈이다. 엄마에게 덕분에 가족 사진 예쁘게 잘 찍었다고 얘기하니 엄마는 기세등등하게 거 보라고 너한테 잘 어울린다고 하지 않았냐고, 가져가니 잘 입지 않냐고 말했다.


“근데 엄마, 이제 진짜 옷 주지 마. 나 미니멀리즘으로 살 거야.”

“어, 그래. 미니멀리즘으로 살아. 근데 이거 여름에 입으면 너무 좋을 거 같지 않아?”

엄마는 하늘하늘한 여름 치마를 건넸다. 동생이 안 입는다고 하여 가지고 왔다고.

엄마를 거쳐 내게 온 원피스와 치마

“안 입어! 나 꽃무늬 제일 싫어해!”

“왜 안 입어? 너한테 진짜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여름에 시원하게, 편하게 입으면 되지.”


나의 미니멀리즘 선언은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꽃무늬 여름 치마 한 벌을 획득하였다.

미니멀리즘 추구하기가 이리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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