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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15. 2023

포식인가 사육인가

괌 여행기(3)

괌 PIC는 식사 포함 여부에 따라 골드, 실버, 브론즈로 등급이 나뉜다. 브론즈는 식사가 불포함되어 있고 실버는 조식만 포함되어 있다. 골드는 조식, 중식, 석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나는 호텔 숙박의 꽃은 조식 뷔페라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조식을 포함하여 예약한다. 이번 예약도 골드냐 실버냐에서 고민하였다. 세끼의 식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면 편하지만 호텔에서 내내 밥을 먹는 것이 질릴 수 있고 PIC의 음식이 그리 맛있지 않다는 평이 있어 예약 당시 굉장히 많이 고민되었다.


우리 가족이 그간 다닌 여행에서 보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어차피 잘 안 돌아다닌다.

2. 식사는 방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 룸서비스로 시키거나 컵라면이나 레토르트 음식(컵반, 햇반과 김 등)을 선호하고, 가까운 쇼핑몰에서 내가 음식을 포장해 오기도 한다.

3. 배고픈 것도 싫고 사람 많은 것도 싫어서 줄 서서 가는 맛집에 안 간다.

4. 맛없는 건 안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미각이 발달한 미식가도 아니다.


결론은 6박 내내 골드카드인가!

그러나 잠시라도 호텔 밖을 벗어나고픈 나는 한두 끼의 외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또한 6박을 골드카드로 하려니 비용도 은근히 부담되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앞의 3박은 실버로, 뒤의 3박은 골드로 예약하였다. 참고로 골드로 예약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골드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업그레이드는 사전에 골드로 예약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비싸다. 또한 실버 또는 브론즈에서 골드로 업그레이드는 가능하지만 골드였다가 다운그레이드는 불가하다.



골드가 아닌 날 점심은 한국에서 싸 간 컵라면, 컵반 또는 ABC 스토어에서 산 스팸 무수비, 샌드위치 등으로 해결하였다. 저녁은 하루는 K 마트에서 피자와 치킨윙을 사 와서 방에서 먹었고 (맛이 없었다!) 하루는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프로아(Proa)에 가서 먹었다.


프로아는 예약 없이 가면 오래 걸린다고 하여 방문 하루 전 식당 사이트에서 예약을 하고 갔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아이들과 슬슬 걸어갔다. 식당 근처에 가니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났다. 예약을 한 덕분에 바로 앉았고 식당은 이내 사람들로 꽉 찼다. 손님에 비해 직원이 적은 느낌이었으나 직원들이 신속하게 서빙을 하였다. (고급스럽고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진 말자) 음료와 치킨 퀘사디야, 펜네 파스타는 금방 나왔는데 메인 식사인 스테이크가 나오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은 스테이크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예전 같으면 스테이크 언제 나오냐고 징징댔을 텐데 이젠 좀 컸다고 잘 참았다. (둘째는 미리 준비해 온 종이와 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려 먹은 립아이 스테이크 맛은? 말해 뭐 해! 적당한 그릴 향이 입혀져 잘 구워진 립아이 스테이크 두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3박을 묵은 후에 체크아웃(실버 카드를 반납)하고 다시 체크인하며 골드카드를 받았다. 골드카드를 받으며 내심 기뻤다. 이젠 내가 끼니를 챙기지 않아도 되니까. 더 이상 아이들로부터 "방에서 밥 먹으면 안 돼요? 햇반 안 남았어요?"라는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는 세 번의 조식을 먹고 뷔페 음식에 슬슬 질려 가고 있었다. 뷔페란 속성이 그렇듯이 뭔가 음식이 많은 것 같으면서 막상 먹으려고 보면 먹을 게 없다. 하지만 중식과 석식은 음식의 종류가 달라지니 다시 열심히 먹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중식과 석식은 맥주와 와인이 무제한 제공 아니던가! 다시금 전투 의지를 불태워본다.


나는 뷔페에 갈 때마다 내 생에 처음 뷔페에 가던 때가 생각난다. 어렸을 적 뷔페가 거의 없던 시절, 뷔페라는 말도 생소하던 시절에 부자 친척과 함께 (무려) 인터컨티넨탈 호텔 뷔페에 갔다. 처음 가본 형태의 식당에 당황하고 너무 많은 음식에 압도되었다. 어떤 음식을 퍼야 할지 몰라서 가장 친숙한 모닝빵과 김밥을 갖고 왔더니 엄마가 "평소에도 먹는 음식을 갖고 왔어? 평소에 못 먹는 걸 먹어야지."라고 하였다. 평소에 이것저것 먹어봤어야 뭐가 뭔지 알지!   


그래서 나는 뷔페에 가면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스스로 골라서 먹게 한다. 맨날 가져오는 모닝빵을 또(!) 가져와도 그러려니 한다. 뭐라도 맘에 드는 거 먹으면 되지, 뭐.



골드카드로는 뷔페 외에도 호텔에 있는 식당을 다 이용할 수 있다. 단, 일부 식당은 예약이 필요하고 바다 옆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선셋바비큐(Sunset BBQ)는 예약 및 차액(어른 1인당 $20, 어린이 1인당 $10) 지불이 필요하다. 바비큐를 먹으러 가기 전에 비가 마구 쏟아졌는데 다행히 방에서 나갈 때는 비가 그쳤다. 바비큐장에 입장할 때 비가 와서 들이친다 해도 취소는 안 된다고, 다른 식당에 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가도 된다고 경고(?)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먹는 동안 비가 오지는 않았다. (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어린이 셰프 모자를 쓰고 자기가 요리사라고 좋아하는 둘째를 보니 초등 저학년 때가 제일 순수하게 즐거움을 즐기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밥 먹는다고 더위와 벌레와의 싸움을 벌이느라 부루퉁한 첫째를 보니, 얘도 몇 년 전에 여행 다닐 땐 온몸으로 신나 했는데 이젠 예비 사춘기가 왔나 보다 싶어 조금 섭섭했다.



선셋바비큐와 수영장 스낵 코너에서 햄버거를 먹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뷔페에서 밥을 먹었다. 고민 없이 삼시세끼를 먹다 보니 지금이 점심인지 저녁인지 구분이 안 가고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부른데도 끼니가 되어 끼니를 챙기는 우리는 포식 중인가, 사육을 당하는 건가. 한국 와서 오랜만에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니 그곳에서의 고민이 배부른 소리였다는 게 확 체감되었다. (괌에선 확실히 배고플 새 없이 계속 배가 불렀건만 한국에 오니 왜 자꾸 배가 고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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