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들과 최초의 기억에 대해 얘기했다.
큰아이는 유치원 때 지니키즈(온라인 학습매체)에서 봤던 지하철 관련 내용이 최초의 기억이었던 거 같단다. 그 영상으로 지금까지 지하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물론 큰아이는 그 영상을 보기 전에 지하철을 여러 번 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상이 더 와닿았겠지만.
둘째는 네댓 살에 상가 앞 계단을 오르던 게 최초의 기억이었던 거 같다고 얘기했다. 누구랑 계단을 올랐는지, 어떤 상황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계단을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고.
나도 최초의 기억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는 5살에 처음으로 미술학원에 갔어. 그때는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없던 시절이라 집에 있다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그랬거든. 엄마는 6살부터 유치원에 다녔는데, 유치원 입학 전에 미술학원에 가본 거야.
엄마 앞에 앉은 남자애가 축구하는 사람들을 그리는데, 종이를 반으로 나눠서 반은 사람 머리가 위로 가게 그리고, 그 종이를 돌려서 또 사람 머리가 위로 가게 그리니까 한 그림 안에서 방향이 다른 거야. 그게 너무 이상해서 왜 그렇게 그렸냐니까 걔가 오히려 엄마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같은 편, 다른 편이니까!"라고 대답했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그렸다고요?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들은 "아아!" 하더니 "난 또 이런 건 줄 알았네!"라며 각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둘은 낄낄대며 반을 나눠 사람의 방향을 다르게 그릴 수 있는 모든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문해력 격차, 읽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읽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가>> 에는 같은 내용을 책으로 볼 때와 동영상으로 볼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험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책으로 읽은 학생들의 그림은 다양한 모습을 그렸지만, 애니메이션을 본 학생들의 그림에는 하나같이 수도꼭지가 있었다고 한다. 동일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독서를 한 아이들은 활자를 통해 자신만의 상상을 한 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시각적인 정보가 너무나 뚜렷하기에 애니메이션으로 형성화된 것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한 것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는 게 실험의 결과다. (이외에도 책의 제목이나 내용을 기억하는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는 결과도 있었지만 이건 여기선 논외로 하겠다.)
TV나 핸드폰이 아니더라도 아파트 엘리베이터만 타도 광고 영상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쉽게 영상을 접하는 영상의 시대를 살면서 영상을 무작정 제한하며 아이들을 키우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영상에 주입되지는 않도록,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나 책을 통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재차 해본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각기 생각했던 그림이 달랐던 건 나의 미흡한 설명 때문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만약 좀 더 디테일하게 묘사를 잘했다면 저런 기괴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겠지.
어쨌든 아이들과 대화하고, 낄낄대며 웃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 내용을 남기고 싶어져 오랜만에 쓴다.
이 기괴한 그림은, 여전히 우리의 웃음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