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 되나요?> 솔직 리뷰
***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
김선호 배우를 좋아한다. (김선호의 사생활은 별개로 하고.)
김선호의 연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그는 능청스러움과 달달함을 넘나들면서 감정을 잘 표현한다. 감정 처리가 결코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다.
대사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당황한 연기를 할 땐 말을 더듬는데 인위적인 느낌이 없이 실제 상황인 것만 같다.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구분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제작진과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의 작품을 전부 찾아볼 정도의 팬은 아니지만, 그동안 김선호가 출연한 드라마는 다 재밌게 봤다. <스타트업>, <갯마을 차차차>, <폭싹 속았수다>까지.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이하 <이사통>으로 부르겠다)를 김선호 때문에 보게 됐다. 멜로눈빛 장인이 이번엔 어떤 달달함을 보여줄지 기대돼서.
또한 인스타에 자꾸 예고편을 비롯한, 짧은 영상들이 떴고, 그 영상들에 담긴 일본과 캐나다와 이탈리아가 예뻤다. 여행을 좋아하는 로맨스 덕후인 나에겐 'Why not?'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이사통>은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과 '차무희'(고윤정 분)가 우연히 일본에서 만났다가 훗날 일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설정부터 뭔가 불편했다. 남주의 직업이 다중언어 통역사인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이탈리어, 독일어 등 9개 국어를 구사하고 심지어 이 언어들을 다 통역할 수 있다고 한다. 동시통역을 비롯한 공식회의 통역까지 다 할 수 있다니 놀라움을 넘어 불편했다.
통역사들은 통역 업무를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철저히 준비한다. 특정 영역의 단어부터 배경지식까지 다 알아야 원활한 통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한 개 언어를 전문적으로 한다.
나의 불편함에 대해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은 남편이 대답했다. "폴리글롯(polyglot)인가 보네. 실제로 있대. 흔하지 않으니까 드라마에서 썼겠지."
그래, 현실에 없는 판타지로 생각하고 봤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현실로 받아들였네.
극 중에서 가장 중요한 통역사란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통역의 기본은 직접 화법 전달이다. 화자가 말한 그대로 뜻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통역이 간접 화법으로 되었다. 예를 들면 "잘 잤어요?"라고 통역해야 하는 것을 "잘 잤냐고 하네요."라고 한다든지. 직업의식이 철저한 남주가 통역하기 싫은 말은 과감히 안 해버리기도 한다. '드라마적 허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본을 무시한 설정 아닌가.
나의 불편함은 극 초반에서 후반까지 쭉 이어졌는데, 이 리뷰는 나의 불편함을 기술한 글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사통>은 어떤 부분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 또 어떤 부분은 개연성이 전혀 없이 스리슬쩍 넘어간다.
드라마 속에서 여주 '차무희'가 일본 배우 '히로'(후쿠시 소타 분)와 여행 예능을 찍는데, 준비부터 촬영 장면이 제법 그럴싸하다. 실제로 예능을 찍을 때 저렇게 하겠구나 싶다.
극 중에서 예능 촬영을 해외로, 그것도 캐나다까지 갔는데 갑자기 일본 배우 히로가 콘택트렌즈가 빠져서 촬영을 못하겠다고 숙소로 가버린다. 당연히 제작진은 난리가 난다. 제작진이 히로를 찾아가고 여주 차무희가 찾아가고, 마지막엔 주호진이 찾아가서 설득을 한다. 어찌어찌하여 히로는 촬영장으로 복귀하여 그날의 촬영분을 잘 찍는다.
그런데 다음날, 오로라 촬영을 하러 가기로 한 날에 예능의 연출자가 갑자기 개인 사정으로 귀국을 한다. (뭐라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그래서 촬영을 하루 쉰단다. 예능 제작진은 배우들과 통역사에게 자유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전날엔 배우 때문에 반나절 촬영 못한 걸로 그 난리를 쳤으면서 연출자 때문에 하루를 통으로 날린다고?) 오로라 촬영은 이틀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연출자 때문에 하루로 줄인단다. 해외 로케 촬영은 모든 게 돈이라 하루만 촬영 펑크가 나도 타격이 클 게 자명하건만. 게다가 만나기 힘든 오로라니 연출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악착 같이 찍어야 할 거 같은데.
연출자가 갑자기 귀국한 이유는 나중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주호진이 짝사랑하던 다른 PD를 대체 투입하기 위한 작위적 설정이었던 거다.
또 하나의 예시로는 인스타그램을 들 수 있다. 차무희는 무명 배우 시절 일본에서 몰래 찍은 주호진의 옆모습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는데, 차무희가 유명 배우가 된 후에 사람들이 이 사진에 대해 궁금해한다. 주호진이 차무희를 찾아가 자신의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하자 차무희는 말한다. 인스타가 얼마나 예민한 공간인 줄 아냐고, 그냥 두면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삭제에는 곧 의미가 부여된다고. 이 사진을 삭제하면 이 남자는 내가 뜬 후에 나에게 뻥 차인 것처럼 보일 텐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나는 이 대사가 굉장히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공인들, 특히 셀레브레티의 인스타는 충분히 그렇겠다고 공감했다.
하지만 이후 예능 촬영지인 이탈리아에서 차무희는 - 더 정확히는 차무희의 다른 인격인 '도라미'는 (설명이 복잡하니 생략하겠다) - 매일 밤중에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린다. 신기하게도 이것에 대해선 아무도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예능 제작진부터 차무희의 매니저까지 아무도 그녀가 밤에 외출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에도 아무런 코멘트가 없다.
아니, 이게 대체 뭔 허술한 설정이람? 같은 대상을 너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데다 부연 설명마저 없다니.
그러니까, 이게 애초에 판타지로 정의되는 드라마였다면 내가 이토록 불편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장면에선 굉장히 현실적인 시각을 지니다가 '아니지롱. 내 맘대로 할 거지롱.' 이런 느낌으로 개연성 없는 사건들이 마구 이어지니 너무 짜증이 났다.
나는 <이사통>의 작가가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남녀가 서로의 언어를 통역하듯이 이해하며 사랑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맘에 들었으나, 일관되지 못한 시각과 작위적 설정 때문에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아름다운 촬영지와 미남미녀 남주여주도 가려질 지경이었다.
(오래전에 홍자매 작가의 전작을 두어 편 봤었는데 그때도 이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드라마는 참 예뻤다. 일본과 캐나다와 이탈리아가 아름다웠다. 보통 드라마 해외 촬영은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현지의 스케줄이 되는 대로 먼저 촬영한다고 들었는데, <이사통>은 배우들의 감정선을 위해 촬영 순서를 극의 흐름에 맞췄다고 한다. (굿 포인트!)
김선호 배우는 역시나 멋졌다. 얼굴도, 눈빛도, 옷빨도 좋았고, 목소리까지 좋은지는 이번에 처음 느꼈네. 고윤정 배우는 예뻤다. 얼굴도 예쁘고 하는 짓도 귀엽고, 무슨 옷을 입어도 고급스럽고 예뻤다. 그냥 다 예쁨. 연기하는 발음은 조금 뭉개져서 딕션만 개선하면 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 두 배우의 케미도 좋았다. 실제 두 배우는 열 살 차이가 나지만 극 중에선 나이 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드라마에선 나이가 나오지 않는다.)
김선호가 나오는 다른 작품은 또 보고 싶다. 다만 홍자매 작가가 쓴 작품은 피하고 싶다.
참고로 나는 <이사통>을 두 번 봤다. 처음엔 이 괴로움을 온전히 참고 봤고, 두 번째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를 보듯이 봤다. 마음을 비우고 판타지로 보면 한결 낫다.
+ <이사통> 제작진이 어찌나 세심한지 매 회 남주와 여주의 감정 흐름에 맞춰 오프닝의 배경 색깔과 문장 부호를 바꿔서 내보냈다는 내용을 봤다. 드라마를 다 보고 한참 있다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오, 그런 게 있었어? 나는 오프닝을 건너뛰어서 몰랐구나!'라고 신기하게 보다가 약간 실소가 나왔다. 그 정성으로 드라마를 더 세심하게 만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