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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Feb 16. 2022

지지리 궁상엔 약도 없다

* 본 글은 지지리 궁상을 주절주절 풀어낸 글이므로, 그런 류의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얘들아, 엄마 3월부턴 회사 안 간다."

"재택도 안 해?"

"응, 재택도 안 해."

"엄마 해고됐어?" (큰 아이 왈)

"엄마 쫓겨났어?" (작은 아이 왈)

음... 매우 적절한 어휘를 적합한 상황에 사용했구나. 마음속으로 칭찬 좀 하고.

"아니야. 엄마 휴직 냈어. 쉬기로 했어!"

"예이!!!"


그동안 아끼고 아껴두었던 비장의 카드 육아휴직을 3월부터 쓰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오늘인가?'라며 가슴속에 품은 육아휴직 카드를 꺼내고 싶은 날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아이가 초등 입학을 하는 시기에 맞춰 휴직을 신청하였습니다.


회사 다니는 저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봐 주신 양가 어머니들의 체력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더 버티다간 제가 병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과감히 질렀지요.



보통 아이를 출산하면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쓰는데 저는 첫째 아이를 출산하던 시점에 진급을 고려하여 출산휴가 90일만 사용하고 복직했습니다. 90일이면 산후조리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몸이 아직 다 회복되지도 않은 시점에 무리해서 복직을 했다 싶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의 관절이 다 아팠습니다. 손가락, 손목, 고관절, 무릎, 발목이 빳빳하게 굳은 채로 잠에서 깨서 '아, 나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근해서도 무릎이 아파 계단을 어기적 어기적 오르내렸습니다.


그놈의 진급이 뭐라고.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진급은 중요합니다. 진급 시기를 한 번 놓치면 언제 될지 알 수가 없고 기나긴 기다림 플러스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안 그래도 힘든 직장 생활이 더 힘들어집니다. 어쨌든 운이 좋게도 그 해 진급이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15개월쯤 됐을 무렵, 제 귀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소리가 두세 겹으로 들리는 소리 번짐, 외부의 소리가 과하게 증폭되어 머릿속에서 울리는 증상, 귀에 물이 뺑뺑하게 가득 찬 증상 등이 나타난 거죠. 이명과 저음역대 난청은 덤이었습니다. 휴가를 쓰고 병원에 다녔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얘기하는 소리, 뒤에서 회의하는 소리 등등 모든 소리가 증폭되어 매우 크게 울려서 들렸거든요. 특히 안 그래도 시끄러운 구내식당을 내려가면 왕왕왕 하는 소리가 머리를 꽝꽝 때려대는 통에 공포심마저 생겼습니다.


결국 계획에 없던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그 당시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계셨는데 육아휴직 기간에도 오셨습니다. 제가 병원에 다니며 요양해야 했고, 극도의 하이톤 목소리인 우리 아이의 말소리를 하루 종일 들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할 것 같던 증상은 다행히 3개월 만에 완화되었습니다. 증상이 싹 사라지길 기대했지만 몸이라는 게 한번 나빠지면 이전 좋았던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긴 힘든지 서서히 좋아지더라고요. 지금도 잠이 부족하거나 피곤한 날은 이충만감(귀가 꽉 찬 상태로 느껴지는 증상)이 나타나고, 몸 상태가 괜찮은 평상시에도 귀에 물이 찬 듯이 막혔다 뚫렸다 하는 증상은 수시로 있습니다.


어쨌든 3개월 쉬고 살 만해질 무렵 저는 한국어 교원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등록했던 과정인데, 막상 들어보니 제 관심 분야와 맞는단 생각이 들어서 즐거웠고, 오랜만에 수업이란 걸 들으니 참 좋았습니다. 난생처음 수업을 들은 후 복습이란 걸 해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자격증을 딸 생각이 없었는데 기왕 공부한 게 아까워서 독서실까지 끊어서 더 공부하여 자격증까지 땄습니다. 그때 수업을 듣고 독서실을 다니던 시간이 제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를 출산하고서는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을 아주 조금 붙여서 쉬고 복직했습니다. 그땐 남편 직장의 거취 문제도 있었고 저도 '회사를 관둘 게 아니라면 일단 다닐 만큼 다니고, 휴직은 아껴뒀다가 나중에 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현 부서에서 다니다 보니 또 진급 시기가 찾아왔지요. 사실 '나의 꿈은 만년 과장'이란 모토로 구석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그걸 가만히 둡니까? 진급하려면 비중 있는 일 많이 해야 한다며 위에서 쪼아 대는데 '됐어! 집어치워!'라는 마음속 소리를 억누른 채 따를 수밖에요.

 

이게 한 번 떨어질 땐 그런가 보다, 두 번 떨어질 땐 화가 났는데, 세 번째 떨어지니 상당히 의기소침해지더군요. 진급 누락 소식을 확인한 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며 '내가 회사에선 루저지만, 너희들에겐 좋은 엄마니?'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회사 내에서나 상사지, 밖에선 다 아줌마, 아저씨고 내 직급 또한 회사를 벗어나면 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직장에선 그게 안 됩니다. 내가 한 자리에 머문다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후배들이 나보다 높은 직급이 되는 걸 보면 '만년 대리'나 '만년 과장'으로 은퇴하셨던 분들을 새삼 존경하게 됩니다. 모든 열등감과 굴욕을 어쨌든 잘 극복하신 거니까요.  

 

네 번째 진급 발표 시기에 제 상사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다들 잘 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진급 발표는 유예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운 시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무려 사수, 오시 만에(!) 차장 진급이 되었습니다. 월급이 많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퇴직할 때 퇴직금이 올라갈 테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배 차장들이 나에게 뻘쭘하게 "과장님."하고 부르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이 부서에서도 진급을 포기한 채 휴직을 써야 하나 위기가 찾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눈앞이 어지럽다 싶더니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니 '전정신경염'이라고 했습니다. 귀에 있는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겨서 눈동자가 휘릭 돌아가는 병입니다. 참 희한한 병도 다 있죠. 결국 또 귓병이었습니다. (징하다 징해!) 그때는 재택근무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얄짤없이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1주일 휴가를 다 쓰고서도 회복되지 않아 휴직 신청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 당시 (전임) 팀장님은 참 따뜻하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쉬엄쉬엄 하고 힘들면 보건실 가서 쉬다 와요." 해주신 덕에 휴직을 내지 않고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팀장님은 퇴사하시고 미국에 가셨네요. (좋은 상사는 다 떠나갑니다.)



아무튼! 왜 지지리 궁상이냐 하면... (이제야 본론)


휴직을 신청하고서 휴직 들어가기 전에 많은 일들을 끝내고 가려고 지난 두 달 동안 경주마처럼 달렸습니다. 최대한 깔끔하게 떠나가려고 미친 듯이 일을 하는데, 새로운 일도 미친 듯이 계속 들어와서 깔끔한 이별이란 불가능하겠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지요.

  

'일 다 못 끝내고 가면 어쩌지? 이건 어떻게 할까? 저건 어떻게 할까?' 그 생각만 내내 하다가 '휴직 기간 동안 뭘 하면 좋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본연의 임무인 엄마 역할을 해야겠지만 그것만 온전히 하다가 휴직 기간이 끝나면 너무 허무할 것 같거든요. 첫째 휴직 때처럼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태 일만 하느라 다른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브런치라는 든든한 백이 있지요. 수익 창출은 안 되지만 쉬는 기간 동안 글을 많이 써봐야지,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하지 않더군요.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소설도 휴직 기간 동안 한번 도전해 볼까 싶었습니다. 공상하고 구상하면서 한 2주간 혼자 즐거웠습니다. '틀을 어느 정도 잡아놓고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해야지.'라며 조금씩 끄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타가 찾아옵니다.

'로맨스에 19금 장면이 없어도 되나? 난 19금은 죽었다 깨나도 못쓰는데 청춘 로맨스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합니다.

'이게 청춘 로맨스는 맞나? 나 혼자 재미있나? 다시 보니 재미도 없는 거 같네. 재미도, 감동도 없으면 누가 읽을까? 소설의 가치란 무얼까? 애초에 난 왜 소설을 쓴다고 했지? 에이, 결론도 아직 안 정했는데 관두자. 어휴, 괜히 브런치에 올리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러다 보니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기대하던 것이 사라지니 풍선이 팡 터지고서 '휘유~' 하고 떨어지듯이 갑자기 모든 게 재미없어졌습니다. 다가올 휴직 기간마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못한 채 회사에 복직하는 생각을 하며 괴로워졌어요.

제가 참 고민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가 봐요. 그냥 편하게 지내면 될 것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버려서 누가 이 글을 끝까지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브런치에 써놓은 글은 여태껏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은 후회하게 되려나요? 미우나 고우나 제 글이니 아껴줘야겠지요.


하여간 휴직을 앞둔 지금(D-7) 쾌재를 부르며 춤을 춰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궁상이나 떨고 있으니 지지리 궁상엔 약도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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