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 : 4

미쳐야 가질 수 있다

by 똠또미
외골수, 미치다, 몰두하다 그 어딘가



무엇을 좋아하세요? 어떤 걸 좋아해?

이런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냥 요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상담에 온 아이가 물어봤다. 상담에 온 내담자를 이해하며 분위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아이스브레이킹이었지만 역질문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 그런지 굉장히 낯설고 오묘했다. 당황스럽다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듣는 질문에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하루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묘한 기분으로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할까?


어릴 때는 좋아하는 음식부터 취미, 옷 스타일, 행동, 좋아하는 사람까지 숨도 쉬지 않고 줄줄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숨 쉬는 시간마저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나에 대하여 전달하는 개성 넘치고 명확한 아이였다.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 존재했던 뿌요뿌요 음료 또는 팬돌이 음료와 함께 350원이면 살 수 있던 새우깡을 먹는 게 낙이었다. 엄마, 아빠가 있던 가게에서 평온하게 앉아서 티브이를 보며 언니가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기 전 모든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방과 후의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이었다. 가게 찬장 밑에 앉아서 따뜻한 전기장판을 틀어두고 방문형 학습지를 푸는 것은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입고 다니던 옷은 핑크색이 섞인 공주 옷이나 검정 털 방울이 달려있는 빨간 망토를 입고, 날이 꽤나 추우면 상아색 떡볶이 코트를 입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집에 있는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만든 김밥은 20일 이상을 먹어도 질리지 않던 나의 소울푸드였다.


이렇게 명확하고 분명했던 아이는 점점 크면 클수록 나의 시선이나 기준이 아닌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어 지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잊고 지낼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단 친구들이 좋다고 말했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내가 좋아하는 놀이보단 친구가 놀자고 제안한 놀이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말 친구로서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다. 동경하는 말이 맞을 정도로 너무 좋아했던 친구인 만큼 그 친구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똑같아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친구의 행동이나 말투, 행동, 옷 스타일 마저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그 친구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왜 날 따라 해? 짜증 나."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큰 충격이라 그런지 순간 속상한 마음에 소변이 찔끔 나올 정도로 내 신체 반응마저 조종하는 듯하였다. 그 친구가 좋아서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친구를 따라 했지만 마음과 다른 친구의 반응과 말, 표정이 며칠 동안 잊히지 않자 매일 밤 엄마를 껴안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잃을 정도로 그 친구가 좋았던 건데, 그 마음을 몰라주자 너무 속상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해도 따라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친구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하여 내 말이나 행동, 옷 스타일 하나에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숨소리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지만 명확하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을 따라 하기보다는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멋있다고 생각한 모습들을 머릿속에 남기며 따라 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주변 사람들과 말을 하면서도 내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이런 행동은 점차 멍을 때리면서도 사람을 보는 경지까지 이어졌으며 대화 도중에도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있지만 말을 하는 멀티태스킹마저도 가능해졌다.


말하면서 보는 행동이 동시에 되자 남들보다 보는 능력이 뛰어나지기 시작한 것 같다. 보는 것이 뭐가 장점이겠느냐만은 연기과에 진학하였을 때는 예리한 관찰이 장점으로 발휘하게 되었다. 배우의 행동이나 시선, 근육의 떨림까지도 살펴보며 자극을 받기도 했다. 남들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보는 능력은 길을 지나가다 버려진 쓰레기들 중에서도 어떤 피자 박스가 있는지 볼 정도로 예리하게 발달했다. 친구들이 여행을 갔다고 자랑하며 보낸 사진에서 보이는 도로길 팻말을 보며 어떤 지역에 놀러 갔는지를 찾아내는 행동이 되기도 했다.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 이상으로 변태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지만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찾다 보니 생각이 길어졌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관찰]인 것 같다. 다채로운 세상을 보는 것.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것. 그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는 것.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어떤 말을 하는지 듣지 못해도 상상하는 재미를 만들어 준다. 종종 나 자신이 게으르다고 느낄 정도로 나보다 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느슨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받기도 하며,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시는 모습에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내 마음과 달라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방법으로 나만의 방식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나의 방식이 잘못되든 잘되든 나는 관찰행동에 미쳐버릴 정도로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관찰은 나의 직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도 있을 정도로 몰두해 버린 행동 중 일부가 되었으며 이제는 좋아하는 행동 혹은 취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이유가 없는 것이 어디 있겠어. 어떤 것이든 이야기는 담겨 있다. 그 이야기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