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사다.
아픔은 누구나 있어요
현재 나는 상담사 혹은 치료사로서 센터에 방문하는 내담자들에 따라 역할을 바꾸어 가며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이 내 삶이 될지는 사실 나도 몰랐다. 그래서 문득 내가 이곳에 있을 사람이 맞는지 자격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를 찾는 내담자가 있는 한 지금의 일에서 물러서거나 그만 둘 생각을 아직은 하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첫 대학 졸업즈음이었던 것 같다.
20살 그냥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알 수 없이 모호한 기분이 스치며 공허함이 감돌았다. 늘 친구들이 많고,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기분은 나에게 불쾌하면서도 예전부터 느껴온 감정들이라 생각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었던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자유가 찾아온 20살, 아무리 놀고 바쁘게 지내도 괜스레 찾아오는 슬픔의 썰물은 익숙해지지 못한 채 나의 상태를 더 축축하게 적시어 갔다.
당시 전문대 연기과에 진학하였으며 늘 바쁘게 무대 작업을 하며 밤샘을 하고, 이른 아침에는 학생회 회의,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들었으며 시간이 나는 틈틈이 공연 준비와 예산기획, 학과 홍보 등 학생이라기보다는 이미 사회인처럼 너무 많은 부담감을 떠안고 지냈던 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빠르게 시간은 흘러서 졸업에 다다르고 있었다. 당시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하여 학과에서 특강을 진행하였는데, 지금은 많이 친숙해졌지만 당시에는 생소하고 나에겐 센세이션 했던 '연극치료'수업을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다.
연극치료 수업에서 활용했던 작품은 [아기돼지 삼 형제]이었다. 20대들에겐 유치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조원들과 우리만의 방식으로 연기를 해보라고 하기에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자 점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작품 연기가 끝나고 나자 수업을 강의해주신 강사님, 아니 어쩌면 당시의 내 치료사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왜 집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했어?"
이토록 순진하고 순수한 극 작품 안에서 내가 들켜버리자 강한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러는 동시에 왜 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인지, 왜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려 했는지 강사님은 알고 있다는 듯 나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21살, 남들 앞에서 아이처럼 모든 것을 놓고 울어버린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하나의 극작품을 가지고 연기를 하지만 본인의 성격이나 행동 특성, 인지가 고스란히 보이는 작업인지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내 생존 방식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큰 폭풍처럼 연극치료라는 심리치료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전부터 가려운 곳이 있지만 모호해서 긁지 못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긁어지는 듯 한 해방감과 심리적 해소를 경험하자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을 받는 내담자로서 그리고 심리상담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서 22살 새로운 인생의 시작과 지금의 일을 하기 위한 시작점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