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오퀄트
파묘를 통해서 한국판 오퀄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민간신앙 정확히는 토속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과거부터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민간신앙과는 뗄 수 없을 정도로 민간신앙과 관련한 문화는 드라마 안에서 깊숙이 존재했다.
드라마 속에서 장독대 위에 물을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라며 딸의 시험합격이나 큰 일을 무탈하게 치를 수 있게 비는 장면을 많이 봐왔다. 여기서 말하는 천지신명이 뭘까 하는 궁금증은 있었지만 그 궁금증을 내 일상에서 경험할지는 몰랐다.
천지신명.
하늘과 땅, 곧 세상 구석구석의 일을 돌보는 온갖 신령들로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부엌이나 마당에 둔 장독대에 집을 지키는 신이 존재한다며 가신을 모시기도 한다. 이밖에도 마을 앞에 있는 장승과 마을에 오래된 나무로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빌고, 천도재를 지내는 등 개개인의 염원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정말 귀신이 있겠어?', '조상신이든 만신이든 이렇게 빌어도 죽은 사람이 내 소원을 들어주겠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이 당신에게는 적어도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는 글이 될 수 있으므로 글 읽기를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민간신앙.
민간 신앙은 오랜 옛날부터 일반 백성들이 믿고 의지하던 토속 신앙으로, 귀신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운다거나 서낭당에 소원을 비는 것 등이 모두 민간 신앙에 속하며, 수천 년을 이어온 민간 신앙은 지금까지도 생활 곳곳에 남아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토속신앙은 민간신앙 안에 속한 것으로서 샤머니즘, 애미니즘, 토테미즘이 있다. 샤머니즘은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것으로 샤머니즘이 발달하던 초기 러시가의 퉁구스인들에 의하면 '주술사'로서 병을 치료하는 동시에 제사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샤머니즘이 발달하게 된 것은 이런 샤먼이라는 역할을 맡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점성술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행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은 무당으로서 신내림으로 이승과 신의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음으로써 샤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샤머니즘 문화는 점차 현대사회에 세속 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역할을 많이 빼앗기거나 배분하여 불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 문화와 융합되거나 뜻을 같이 하기도 하며 우리나라 민속 신앙에 큰 토대를 이루게 된다.
토테미즘은 한 집단이나 부족에서 존중되는 집단의 상징으로서의 동물을 뜻하는 말로써 토템과 인간관계가 제도화된 원시신앙을 말한다. 토테미즘은 특정한 동식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원시신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디언들에게 유래되기도 했다. 동식물과 자신의 부족과 특수한 관계가 있다고 믿거나 집단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기도 한다. 이런 예시로는 힌두교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소를 숭배하는 종교로서 소를 절대 먹지도, 죽이지도 않으며 소가 지나간다면 차를 멈추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소는 그들에게 굉장히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
애니미즘은 라틴어 'anima' 숨, 생명, 영혼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정령 숭배 사상이라고도 한다. 바람, 벼락, 폭풍우 등과 같은 무생물과 같은 자연현상에도 모두 생명이 있다고 보고, 그것의 깃든 초자연적인 존재, 신이 나 영혼, 정령, 요괴 등을 숭배하는 것이다. 신이 나 정령, 영혼은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공중을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인격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애니미즘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작품은 일본 영화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천은 숲에 존재한다. 그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요괴도 아닌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은 각각의 정령들이 되기도 한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모호한 존재들로 잡신을 뜻하기도 한다. 오래된 온천 안 곳곳에 존재하며 각자의 역할을 하는 신들과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알 수 없는 존재로서 다양한 존재들 안에 깃들어서 모양을 바꾸는 가오나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영혼으로서 존재가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열심히 각각의 종교를 논하고, 영화 평론가도 아닌 어쩌면 영화에 'ㅇ'자도 모르는 내가 토속 신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앞으로 전개될 내 이야기의 핵심이자 어찌 보면 나도 나의 삶을 영위하고자 나의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생명으로서 또 다르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틀이 될 것 같다.
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종종 심심할 때 만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