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 : 8

주인공 옆에 걔

by 똠또미
걔 있잖아, 걔




연기과에 진학을 해서 연극을 준비할 때 나와 맞는 배역은 작품 속에 꼭 등장했다.


주인공?


아니. 주인공 옆에 .

잠깐 등장해서 농담 한번 툭 던지는 그런 감초 역할은 작품 속에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좋게 말해 씬 스틸러라고 하기도 하며 작품에 빠질 수 없는 감초이다.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말이지만 흥을 돋우는 역할로 작품 처음에 등장하기보다는 극에 몰입되어 갈 때 분위기를 깨는 역할로 등장하는 싼마이 역할.


나의 역할은 딱 그 정도이다.




작품 속 배역을 정하기 위해서 오디션을 보면 주인공은 절대 넘볼 수 없었다.


내 안에 진지함이 있지만 그 진지함을 드러내면 낯설어서 어색하다며 더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볍게 주인공 옆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약간 가벼운 캐릭터의 아줌마 혹은 관객에게 말을 걸며 극 중간의 시간을 벌어들이는 앞잡이 정도가 나의 위치였다.


사실 내가 잘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주인공이 탐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주야장천 같은 역할만 고수하며 늘 같은 자리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노력해서 더 나은 연기실력을 갖추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주인공 앞에서는 전혀 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극을 이끄는 주인이자 매 씬마다 등장하는 인물로 큰 짐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앞에서 질투에 눈먼 고민을 이야기하기엔 내 그릇이 아닌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애로 보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KakaoTalk_20240425_225858417.jpg 20살의 나 / 욕심 많은 아줌마


나의 인생에서 주인공이었던 때는 생일과 남자친구 앞에서였던 것 같다. 주인공이 되면 모두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나만 바라보며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느끼고 싶은 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걸까?


아니. 난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면 초반에는 힘없고, 어찌 보면 저소득층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꿈이 있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기대하며 하고자 하는 일을 주저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마음대로 도전하며 불도저처럼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꼭 주인공 뒤에서 조력을 아끼지 않는 왕자가 등장한다. 왕자와 주인공은 힘을 합쳐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모두 헤치며 목표에 도달하는 용사와 같은 모습으로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럼 내 인생은 그런 고난과 역경은 있지만 아직 해피엔딩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니. 난 그냥 주인공처럼 힘을 내서 역경을 헤쳐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무서움을 가진 겁쟁이이자, 주인공을 응원하며 내 소망을 대신 풀어나가고자 하는 마음에 도움을 주는 사람 중 일부가 더 맞았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인정하자 결국 나는 주인공이라는 역할보단 주인공 옆에 걔가 되었다.


주인공의 욕심을 내려두고, 본격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도와주는 사람이 맞다고 생각하자 도움을 주는 일에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의미 있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상담사이자 치료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 삶의 새로운 기적의 이야기가 쓰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의 변화의 과정에서 잠깐 만나는 씬 스틸러가 된 지금. 난 비로소 삶에서 진정한 가 되었다.


KakaoTalk_20240425_224213687.jpg 아이가 나와 닮았다며 선물로 준 그림 / 다람쥐=나


그런 걔가 되자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인생의 주인공이 되게 되었다.

주인공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시간도 저마다 다르다.


주인공 옆에 걔면 어때! 내 인생에선 내가 주인공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