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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뷔 Sep 15. 2024

아빠존의 눈물

4. 아이들의 두려움 돌보기

(Project 1) 아이들의 마음 돌보기. 

Part 2. 두려움 돌보기 


해외 생활을 앞두고 아이들에게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큼 큰 감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언어, 날씨, 문화 모든 것이 다른, 낯선 곳에서의 삶.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어른인 저도 두려운데 말입니다.


필리핀 이주 소식에 해맑게 ‘망고 많이 먹겠다’며 좋아하는 4살 둘째와 달리 

원체 걱정 많고 예민한 8살 첫째는 한바탕 울고불고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영어로 수업을 알아듣냐’, ‘여기 내 친구들은 어떡할 것이며, 영어도 못하는데 

새로운 친구는 어떻게 사귀냐’며 안 가겠다며 꽤 오랫동안 울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도 어른처럼 겨우겨우, 어찌어찌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름 치열하게 말입니다. 

그 치열함과 노력으로 나름 형성해 온 익숙한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다시 개척하라고 하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최선이 꼭 아이들에게도 최선이리라는 법은 없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당시에는 아이들의 감정을 깊게 살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 단순히 아이들의 두려움을 달래주자는 생각 정도였습니다.


두려움. 그리고 막막함.


엔지니어인 저는 다시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똥과 방구 얘기에 이미 더럽혀진 제 뇌는 덜그럭거리며 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3화 참조) 

그럼에도 어쨌든 짱구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무지’와 ‘기대에 대한 미충족(=실패)’이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첫 번째 원인은 무지였습니다. 몰라서 두려운 것. 

저는 아이들에게 필리핀에 대해 구글링을 해서 설명해 줬습니다. 

하지만 더운 날씨와 망고를 빼고는 모두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해는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노선을 바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도록 생존할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치자.’


저는 그곳에서 곤란한 상황들을 가정해 거기에서 써먹을 수 있는 생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자격 영어 튜터가 된 저는 영어 회화 시작의 국룰인 “헬로, 하와유? 아임빠인땡큐앤쥬? 아임빠인투”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혀를 굴려봐도 한글에 이미 41년간 숙성된 제 메이드인 코리아 혀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뭘 잘 몰랐던 딸들은 '아빠 영어 엄청 잘한다.'고 해줬습니다.)

저는 ‘화장실 어디예요?’를 필두로 ‘길을 잃었어요.’, ‘도와주세요.’, ‘배고파요.’, ‘고맙습니다.’ 등 정말 생존에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진짜 실생활에서 쓰는 시시껄렁한 영어표현이 담겨 있어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광고 아닙니다. 내돈내산)


50일 영어낭독했지만 원어민은 될 수 없었다.


생존영어가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극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의 걱정이 날로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가 함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 얘기를 지속적으로 정말 많이 해줬습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 정말로 안심하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기대에 대한 미충족 즉, 실패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잘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특히 나름 이것저것 욕심이 있던 첫째는 거기서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두 딸을 앉혀놓고 차분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너희가 거기 가는 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러 가는 거지, 공부를 잘하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가서 재밌게 놀다 오면 된다. 수업 못 알아들어도 괜찮다. 그냥 멍 때려도 괜찮다. 선생님이 뭐 물어보면 ‘아이 캔트 스픽 잉글리시’ 해라. 그래도 된다.” 


기대감을 낮춰 최대한 부담을 덜어주려 했습니다. 

그제야 첫째는 울음을 그치고 조금씩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항간에 요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저희 가족이 멍 때리러 필리핀에 간다는 소문이. 

알고 보니 첫째 딸은 만나는 사람마다 “저 필리핀 가서 그냥 가서 멍 때리면 돼요.”라고 자랑스레 얘기하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아아, 이제 저희 가족은 필리핀에 멍 때리러 가는 괴짜가족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저의 요상한 시도들과 그것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준 아이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아이들의 마음돌보기 프로젝트”는 적당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걱정 마. 엄마, 아빠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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