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레드뷔

그는 껌을 씹었다.


맹렬히, 몰두해서, 열과 성을 다해, 아니, 사력을 다해서라고 할까?

나는 그렇게 껌 씹는 사람은 처음 봤다. 껌 자체가 희귀해진 요즘이라 더 신기했다.


그날 만원 지하철. 인파에 밀려 멈춘 내 앞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나는 혹시 자리가 안 나려나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웬걸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자리를 떴다. 다음 역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나는 쾌재를 부르며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왜 그녀가 자리를 떴는지 알게 됐다.

대충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모습. 그는 껌 씹는 중간중간 구시렁거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구시렁은 이유 없이 점점 고조되다 결국 큰 소리를 한 번 지르고 나서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껍 씹기에 집중했다. 그게 반복됐다.

그를 두고 만원 지하철에 투명한 공간이 생겼다. 나는 미친 사람인가? 했다. 그리고 곧 조현병, 지적장애인 같은 말이 떠올랐다. 해코지라도 당하는 거 아냐? 흉흉한 뉴스가 떠오르며, 두려움과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앞에 여자도 그를 피해 자리를 떴는데, 나까지 그랬다가 괜히 자극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모처럼 난 자린데. 불안과 편안을 끝없이 저울질하던 나는 조금 나을까 싶어 눈을 감았다. 오히려 그의 중얼거림, 껌 씹는 소리가 내 안에 더 도드라졌다.

그는 용산역에서 내렸다. 일어나려는 그의 기척을 느끼고 나는 눈을 떴다. 그의 뒷모습. 그는 셔츠가 땀에 젖어 완전히 달라붙을 정도로 땀범벅이었다. 이제 보니 그와 닿았던 내 한쪽 팔이 축축했다.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조심히 지나, 별 탈 없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나는 안도했고, 그를 둘러쌌던 투명한 공간은 사라졌다.

그가 내리고 나는 마음 한켠이 이상했다. 그의 뒷모습과 열정적으로 껌 씹던 모습이 내 머리에 진하게 남았다.


그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무슨 병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 병을 안고 미안함 속에서 지하철을 타야만 했던 사정. 참기 어려운 충동을 누르려 땀범벅이 될 정도로 집중해 껌을 씹어야만 했던 간절한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저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극도의 긴장과 자기 최선으로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유일한 방법이 껌 씹기가 아니었을까?

그의 행동과 모습에 나는 그를 꺼리고 두려워했다. 공간을 비워냈던 그들도 그러했다.

그럼 그의 선의는 어디에 누구에게 닿았을까.


나는 모른다. 그의 사정과 속내를.

다만, 말끔한 모습으로 속엔 불만, 욕설 가득한 나를 한 번 그에 빗대어 볼 뿐이다.


며칠이 지났지만 땀에 젖은 그의 셔츠가 어른거린다.

마음이 아직 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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