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나도 다이소에서 보조배터리 사 왔어!”
다이소에서 보조배터리까지 판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은이가 사 왔다고 해서 ‘다이소에서는 별 걸 다 파는구나’ 싶었다. 며칠 뒤, 아이 책상을 정리하는데 이런 게 있었다.
이걸 왜 샀냐고 물어보니 보조배터리라고 했다. 내가 사용하는 제품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네모난 배터리에 연결선이 하나 달린 모양이었는데, 아이는 그 모양을 어렴풋이 기억했나 보다. 여기에 ‘충전’이라는 글자까지 쓰여 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위쪽에는 ‘동시 변환 젠더’라고 적혀 있었지만, 아이가 무슨 뜻인지 알 리 없었을 것이다.
아무도 사용할 일이 없는 3,000원짜리 물건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3년 전의 일이다.
하루는 은이의 행동이 못마땅해 화가 났던 날이 있었다. 아이는 다이소에 가서 엄마에게 줄 선물을 사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저녁 일곱 시였다. 깜깜한 저녁에 혼자 다녀오겠다는 말에 속으로 화가 더 쌓였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종이로 포장까지 해서 식탁 위, 내 자리에 올려놓았다. 열어보니 안에는 B 샤프심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뭔지 알고 산 거냐고 묻자,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연필만 썼지 샤프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아마 학용품 코너에서 연필도 아니고, 펜도 아닌 네모난 물건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래서 골랐을 테고.
엄마 선물이라며 사 와놓고는 본인이 더 궁금했는지 요리조리 만져봤다. 뒤집어도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더니 빨간 버튼을 눌러 샤프심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꺼냈다기보다는 쏟아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힘없는 심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그걸 주워 담다 보니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변환 젠더는 보조배터리가 아니었고, 샤프심은 쓸모가 없었다. 내 눈에는 엉뚱해 보였지만 아이에게는 나름의 기준과 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충전’이라는 글자가 있으니 보조배터리일 거라고, 학용품 코너에 있으니 어디엔가는 필요한 물건일 거라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은 반복된다. 아이는 자기 기준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어른은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틀리고, 어른은 옳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의 선택 앞에서, 그 선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한 번 더 보려고 한다. 낭비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결론을 바로잡기 전에, 아이가 보고 있던 세계를 먼저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아이는 다이소에서 정리함, 투명 수납함, 집게, 접시, 플레이콘을 한 아름 사들고 왔다. 다이소 여기저기 코너에서 고른 구성이다.
책상 아래에 자리를 잡더니 수납함에 플레이콘을 담아 보관하고, 집게로 하나씩 집어 물에 녹였다. 접시에 담아 인형들에게 밥을 만들어 주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라고 한다.
애증의 다이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