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떠난 뒤에

함께 산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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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이 등굣길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꼭 등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였다.


한 시간쯤 일찍 나와 정문 앞을 슬렁슬렁 걸으며 실버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네댓 개씩 떨어져 있었다.


화가 났다. 아이들 학교 다니는 시간만 좀 피해서 피울 수 없는 건가. 하지만 내가 나서는 성격도 아니었고,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었다. 다들 아무 말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동에 사는 데다 여든은 훌쩍 넘어 보여 더욱 망설여졌다.


그사이 유치원 반경 30미터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정문 바로 옆에 유치원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길 곳곳에 금연 안내판이 세워졌다. 이제는 달라지겠지 싶었다.


안타깝게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남편이 휴직을 하면서 종종 아이들 등교를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상황을 직접 보게 됐다. 성격이 나와 다른 남편은 몇 번이나 직접 담배를 끄라고 말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알겠다며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신발로 비볐다. 그때뿐이었다. 남편이 보이면 얼른 꽁초를 숨기는 식이었다. 결국 남편이 민원을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 손을 잡고 공동현관을 나서는데 고성이 들렸다. 보건소 직원과 그 할아버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직원은 새벽부터 잠복해 현장을 촬영한 증거 자료를 보여주었지만 할아버지는 끝까지 본인이 아니라며 이름과 연락처를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30분이 넘게 실랑이가 이어지고 있는데 실버타운 차량이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보건소 직원이 기사에게 항의했지만 차량은 그대로 출발했다. 남편에게는 민원 처리 결과로 '도주했다'는 문자가 왔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끝났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편은 화병이 나겠다며 두 손 들었다. 참다 참다 이번에는 내가 120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도 보건소 직원은 한참을 애쓰다 돌아갔다.


오후 늦게 문자가 왔다. 과태료 부과는 실패했고 다시는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예정이라고도 했다. 며칠 뒤 그를 한두 번 더 본 후로는 더 이상 마주치지 않았다. 아이들 등굣길은 눈에 띄게 쾌적해졌다.


누군가 떠났다는 사실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진다는 게 조금 서글펐다.




주말 오후, 아랫집에서 올라왔다. 시끄러웠다고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건 이해하지만 이렇게 한 시간 넘게 계속 뛰지는 않게 해 달라고 했다. 그날은 남편도 나도 각자 할 일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이사를 간다면, 그 소식이 누군가에게는 반갑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불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은 불편한 존재로 살아간다. 함께 산다는 건 완벽하게 피해 가는 일이 아니라 불편을 줄이려 애쓰는 마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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