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셔서 감고 있던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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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태권도 학원에서 명상할 때는 눈 감고 있어도 잠이 안 오는데, 차에서는 해 때문에 눈을 감으면 잠이 와.”


아이를 태우고 교회로 가는 길이었다. 앞 유리로 햇빛이 강하게 들어왔다. 가리개를 내려보았지만 아이 키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반쯤 감은 눈을 그림자 속에 숨기려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말했다.




아이들 겨울 방학 끝이 보인다. 학교 공사로 방과후 수업까지 방학인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너무 추워서, 춥지 않으면 미세먼지가 나빠서, 학원 시간이 애매해서 많이 나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심심해!”를 외치면서도 둘이 몇 시간씩 잘 놀았다. 덕분에 나는 책도 읽고 강의도 들었다. 방학을 제일 성실하게 보낸 사람은 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집순이다. 글 쓰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집이 제일 편하다. 동네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많지만 그 흔한 카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러니 늘 북적인다.

월세를 계산해 보면, 하루에 이 집을 사용하는 비용이 얼마인데. 집에 머무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아주 현실적이고, 살짝은 씁쓸한 근거까지 갖춘.


하루는 이상하게 답답했다. 어디라도 나가자고 말해볼까 하며 아이들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자석 블록으로 전투 놀이를 하다 장난감들을 바리바리 챙겨 안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블록들을 펼쳐놓고 침대 위로 올라섰다. 긴 막대를 가지고 낚시 놀이를 시작했다.


“누나야~~!!”

둘째의 억울함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이때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슬쩍 다가갔다. 첫째는 “알았어 알았어~”하며 블록을 내려놨다. 둘은 다시 조용히 낚시에 집중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답답했지만 이 평화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 늦게 둘째 학원이 있었다. 걸어서 15분 거리. 평소에는 킥보드 타고 싶다는 아이를 온갖 핑계로 설득해 차로 후다닥 다녀왔다. 어제는 내가 먼저 킥보드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그렇게 그날 처음 바깥공기를 마셨다. 공기는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상쾌했다.


자발적 집순이와 타의적 집순이는 달랐다. 나갈 수 있지만 나가지 않는 선택과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구속은 다른 것이다, 라고 결론지으며 빈 킥보드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눈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아이에게 명상은 의지적으로 눈을 감아서 그런 거고, 지금은 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서 그런 거라고. 뭐든 의지가 중요하다고, 이때를 놓칠세라 에세이스트답게(?)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눈이 부셔서 눈을 감고 있던 게 아니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그 평화로운 그 순간이 사라지는 게 더 아쉬워서 의지적으로 눈을 감고 있었던 거였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선택들 가운데는 사실 내가 지켜내고 싶어서 붙잡고 있던 시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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