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친절함보다 막막함이 우리를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한창 레고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자유롭게 만들기보다 '레고 프렌즈'처럼 공주의 성이나 병원, 마트처럼 주제가 있는 모형 완성하는 걸 더 좋아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레고는 본래도 몸값이 높지만 아이들 눈길을 사로잡는 상자는 특히 더 비쌌다. 그래서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사주곤 했다.
비싼 물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레고는 비싼 만큼 무척 정교하다. 누구나 만들 수 있도록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포장부터 그렇다. 수많은 조각은 번호가 적힌 봉지에 순서대로 나눠 담겨 있다. 설명서는 작은 책이다. 작은 부품 하나를 끼우는 과정까지 컬러풀한 그림으로 자세히 보여준다. 필요하면 동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나온 순서대로 1번 봉지부터 하나씩 뜯어 가며 만들다 보면, 어떤 복잡한 작품이라도 다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른다. 레고는 실패할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반면, 없는 게 없을 것 같은 국민 가게 다이소에도 레고와 비슷한 블록이 있다. 작은 동물 모형 같은 간단한 제품은 천 원이면 살 수 있고, 복잡해 보이는 제품도 오천 원이면 충분하다.
다이소 블록의 세계는 그리 녹록지 않다. 블록이 여러 봉지에 나뉘어 담겨 있긴 하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 처음부터 모든 봉지를 다 뜯어 놓고 필요한 부품을 찾아가며 만들어야 한다. 모래사장 속 바늘 찾기다.
설명서도 만만치 않다. 레고가 한 페이지에 한 단계씩 친절히 설명할 때, 다이소는 종이 한 장에 모든 설명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종이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어느 위치에 끼우라는 건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다.
조악한 마감 탓에 잘못 끼우면 빼기도 힘들다. 크기가 맞지 않아 반품한 적도 있다. 옆에서 아이를 돕다 보면 속으로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쉰다.
역시 자본주의구나.
아이는 달랐다. 좋은지 나쁜지, 비싼지 싼 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상자에 그려진 멋진 공룡과 로봇을 완성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놀라울 만큼 집중했다. 친절한 레고보다 불친절한 설명서 앞에서 더 오래 고민하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엄마, 블록이 없어!"
꼭 한 번은 꼭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때면 나는 설명서를 처음부터 살핀다. 대부분 이런 경우다. 네 칸짜리 블록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두 칸짜리 블록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는.
지금은 내가 문제를 찾아 주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초에 말끔히 정리해 두었던 책상 위에는 어느새 다시 블록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해 간다. 아이는 가끔 책상 앞에 앉아 완성된 작품을 가만히 바라본다. 얼굴엔 말간 뿌듯함이 가득하다.
레고는 친절하다.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모든 길을 안내해 준다. 다이소 블록은 불친절하다. 순서도 없고 설명도 단출하다. 아이는 불친절한 블록 앞에서 더 헤매고 더 많이 고민한다. 더 깊이 몰입한다.
성장은 언제나 잘 안내된 길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방향을 잃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스스로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라나기도 한다. 아이의 책상 위 늠름하게 서 있는 블록들이, 때로는 불친절함이 가장 다정한 스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