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사람 말 모르잖아

남의 시선보다 내 마음을 기준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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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진이와 마트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진이는 길가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주차된 차들 가까이에 붙어 걸었다. 혹시라도 흠집을 낼까 싶어 차에서 조금 떨어져 걸으라 했다. 진이는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나뭇가지를 들고 있으면 괜히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의 눈이 나를 향했다. 까마귀 속담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까마귀는 그냥 날아갔을 뿐인데 하필 그 순간 배가 떨어져서 까마귀가 떨어뜨렸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 평소에 괜히 오해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근데 어차피 까마귀는 사람 말 모르잖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그런데 곱씹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까마귀는 배가 떨어졌는지,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는지 알 턱이 없다. 그저 자기 갈 길로 날아갈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종종 '까마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오해받지 않으려 말과 행동을 한 번 더 돌아보고, 누군가 내 뜻을 다르게 해석하지 않을까 신경 썼다. 물론 그런 태도는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살피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이의 말을 듣고 나니 필요 이상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생기는 오해가 있고, 실제로 아무 일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까마귀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사실 까마귀는 그 모든 일을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날았는가 하는 내 안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조심하며 사는 법을 알려주려 했는데 아이는 나에게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최근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청바지 핏이 마음에 들었다. 같은 제품을 블랙 진으로 하나 더 샀다. 새 바지를 입고 나설 준비를 하는데 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 바지 탔어?"


처음에는 “샀어?”를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진이는 엄마 바지가 원래 파란색이었는데 검게 변해 있어서 바지가 탄 줄 알았다고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토록 단순하고 솔직하다. 보이는 대로 보고, 느낀 대로 말한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너무 많은 해석을 덧붙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 앞에 서면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이 한 겹 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가끔은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까마귀처럼 그저 내 하늘을 날아야겠다. 배가 떨어지든 말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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