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즐겁게 학교로 갔다. 무섭다고 소문난 선생님을 만났다. 그래도 선생님이 너무 좋단다. 선생님이 혼내지 않는다고, 잘못하면 그저 구슬을 빼앗아 가시는데 그래서 더 좋다며 싱글벙글이다.
여름방학이 되니 시무룩해진다. 학교에 못 가는 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아이에겐 큰 슬픔이었다.
걸어서 10분 남짓, 사거리를 건너야 하는 등하교 길이라 당분간은 함께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내 착각이었다. 5월부터 혼자 다니겠다며,신발을 아직 신지도 않은채 현관문에서 "안녕" 하고 인사하기 바빴다.
주위에 초등학교 적응이 고민인 엄마가 많았지만, 우리 아이는 역시 E라며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새로 시작하게 된 일도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10월의 어느 날,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수업 시간 중 전화라면 분명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아이가 아침부터 컨디션이 조금 안 좋더니, 배가 아프고 가슴도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네요. 열도 좀 나는 것 같고요. 혹시 데리러 오실 수 있나요?"
급히 학교로 달려갔다. 배웅하러 나온 담임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써니가 요즘 무슨 일 있나요? 어제도 아침에 울면서 학교에 오던데요."
아이가 울었다고?
어제 아침을 떠올려 보니, 출발 시간이 1분 늦어졌던 일이 생각났다. 딸은 언제 일어나든 스스로 8시 20분에 출발한다고 정해 놓고, 그 시간을 지켜왔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아침이었다. 출발하기 전, 얼굴 피부 트러블 약을 발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잠깐 멈추게 했을 뿐인데, 그게 아이에겐 큰 문제였던 모양이다. 인사도 안 하고 뛰어 나갔는데, 가는 길에 울음이 터졌나 보다.(20분은 본인이 정한 기준일 뿐, 35분에만 나가도 충분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하교 때 만난 친구 엄마도 물어보고, 선생님도 물어보고. 엄마한테 야단맞아서 속상해서 울었다고들 생각했나 보다. 정작 마상 입은 건 난데.
"물어보니깐 엄마가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써니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니깐 더 믿고 기다려 주세요."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상황으로 인해 상처를 받아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날 때, 첫째 아이는 나에게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졸려서 눈물이 난다, 배가 아프다 등등 다른 이유를 대며 울음을 쏟아내곤 했다. 열도 없고, 장염도 아닌 것 같고, 잠시 누워 있다가 배고프다며 밥을 찾는 딸.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울면서 나에게 다가올 때 "네가 다른 일 때문에 속이 상한 것 같은데,그걸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야 같이 공감해 주고 엄마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주지." 하고 이야기하지만 속내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마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엄마에게 털어놓기 싫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스스로 풀어내야 하는 아이라서 그런 걸까. 아이가 말하는 이유를 그저 그대로 믿고 위로만 해주면 되는 일일까. 항상 고민이 된다.
"써니야 요즘 스트레스받아? 선생님이 물어보시던데.."
"음, 공부할게 많아서 스트레스를 조금 받아~"
"그럼 공부할 양을 좀 줄여볼까? 공부를 조금 덜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것 같으면 그렇게 하자."
"아니 스트레스받아도 공부는 하고 싶어. 내가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깐. 싫긴 한데 공부는 하고 싶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까지 대학원에 입학 원서를 넣고 회사에 지원서를 넣고 하는 남편이 생각났다. 이건 유전인 거구나.
"써니는 엄마가 지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응 왜냐면 지니가 더 엄마한테 자랑을 많이 하니깐~ 얼마 전에 거미 잘 발견하고 잘 잡는다고 자랑했잖아."
"써니도 자랑 많이 하면 되잖아~"
"선생님도 그렇게 얘기하시던데 헤헤~ 근데 지니가 자랑해서 잘한다고 칭찬받아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음.. 그건 지니가 칭찬받을 행동을 많이 하지 못해서 찾다 보니깐 그거라도 칭찬해 준 거야. 써니는 모든 행동이 다 칭찬받을 행동이라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건 엄마가 알겠어. 앞으로 써니한테도 많이 표현해 줄게."
딸은 웃었지만, 내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나도 학창 시절에 부모님께 크게 칭찬받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교 1,2등을 해도 부모님은 놀라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란다. 본인이었으면 잔치를 열었을 것이라고.
원래 잘하는 아이는 원래 잘하니깐, 그게 당연시 여겨져 칭찬에 무뎌지는 건 아닐까. 신기한 것은 나도 그 상황에 익숙했다는 것이다. 호들갑스러운 칭찬이 없었다고 다음번엔 덜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