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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와 문자

개입과 믿음 사이, 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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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녀를 둔 지인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가 유난히 피곤해하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몰래 스마트폰 게임하던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시간을 정해놔도 어떻게든 뚫는다고 한다. 참다가 너무 화가 나 한바탕 했다고. 스마트폰 사용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요즘 중학생 아이들 대부분이 게임에 빠져 있다고는 하지만, 내 아이만큼은 아니었으면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니까.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내 고민은 참 귀여운 수준이었구나 싶었다.




우리 첫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작년에 ‘공신폰’을 사주었다. 공부의 신, 줄여서 공신폰.

와이파이가 아예 잡히지 않는 유심을 써서 인터넷은 원천 봉쇄된다. 아이에게 처음 휴대전화를 사줬을 때, 나는 몰래 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누구와 어떤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읽어보고 통화목록도 훑어봤다.


아이의 문자함에는 오래전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와 그걸 패러디한 문자들이 잔뜩 있었다. “이걸 열 명한테 전달하시오. 안 그러면 솔로지옥” 같은 내용이었다. 장난처럼 주고받는 건 알았지만, 괜히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말했다. 이런 건 보내지도 말고, 받아도 굳이 전달하지 말라고.

한동안은 멈춘 듯 보였다. 아이가 화면 잠금 기능을 알게 되면서 가끔 모르는 비밀번호를 걸어두기도 했다.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도 점점 관심이 줄었고, 아이 폰을 들여다보는 일도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패턴을 알게 되어 아이가 자는 사이에 몰래 폰을 켜봤다. 문자함이 텅 비어 있었다. 아이가 눈치챘나 싶어 뜨끔했지만, 다행인지 아직 휴지통 기능을 모르는 것 같았다.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


휴지통 안에는 여전히 행운의 편지류 문자가 가득했다. 받은 문자도, 아이가 단체 문자로 보낸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냥 보지 말아야 했나.

모른 척 넘겨야 하나 한 번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하나 고민됐다.




문득 내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달고나가 먹고 싶었다. 베이킹소다를 사 와 몰래 숨겨두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부엌 서랍을 뒤져 국자를 하나 꺼냈다. 달고나는 성공적이었고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자 바닥이 까맣게 타버렸고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줄줄. 결국 국자를 싱크대 아래 깊숙이 숨겼다. 이후에 또 먹고 싶을 때 꺼냈다가 다시 숨기기를 몇 번 반복했다.


결혼하고 부엌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됐다. 엄마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는 걸. 조리도구 하나 없어지면 금방 티가 났고, 부엌 상부장 하부장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당시 결말이 어떻게 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추억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그리 나쁜 엔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도 비슷한 선택 앞에 선다. 따지고 들면 금방 바로잡을 수 있는 일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야 할까 싶은 순간들. 언젠가 우리 아이가 정해진 시간제한을 뚫고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거나, 새벽에 몰래 깨어 게임을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땐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겠지.

중학생 자녀를 둔 지인도 자기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엄마가 외출할 때 리모컨을 가지고 나갔었다고. 그럼에도 결국 별문제 없이 잘 컸으니 아이도 그냥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걸까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본인도 요즘 아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숨겨둔단다.

아이를 믿어주는 일과 엄마로서 개입해야 할 순간 사이. 그 경계에서 오늘도 흔들리고, 망설이게 된다. 답이 없는 문제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결국 한숨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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