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엉성해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
몇 년 전, 교회 모임에서 포춘 쿠키를 처음 받아보았다. 갈색의 딱딱한 과자를 이로 깨물어 반으로 나누자 안에 돌돌 말린 종이 하나가 나왔다. ‘올해 당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며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이후 몇 번 더 포춘 쿠키 받을 기회가 있었다. 과자는 별로 맛이 없었지만 안에 든 쪽지가 궁금해서 굳이 과자를 먹곤 했다.
우리 집에도 포춘 쿠키 같은 게 하나 있다. 바로 달걀이다. 달걀 하나로 그날의 아침 분위기가 결정된다.
첫째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는 인덕션을 켜고 프라이팬을 달군다. 시작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름을 두르고, 손 씻는 소리가 들리면 달걀을 깨트린다. 소금을 살짝 뿌려 두면 아이가 부엌으로 온다. 뒤집개와 접시를 꺼내주면 아이는 노른자를 톡 터뜨리고 아침 요리(?)를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서 내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달걀을 깨뜨릴 때다.
‘모양이 예쁘게 나올까, 노른자가 멀쩡할까, 흰자가 퍼지진 않을까’
어떤 날은 동그랗게 잘 자리 잡기도 하고, 어떤 날은 깨면서 노른자가 터져버리기도 한다. 그럴 땐 긴장하며 아이의 반응을 살핀다.
프라이팬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표정은 마치 포춘 쿠키 속 쪽지를 확인하는 것 같다. 달걀이 예쁘게 올려져 있으면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고, 노른자가 터져 있거나 모양이 흐트러져 있으면 표정이 굳는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 온 달걀에는 흰자 속에 유난히 갈색 점이 자주 보였다. 혈점이라고 하는데 먹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여유가 있으면 건져내 주지만, 둘째 챙기고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날엔 그냥 두기도 한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인상 찌푸리며 묻는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네가 사 먹는 달고나보다 백 배는 괜찮고, 아이스크림보다 천 배는 더 나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조용해진다. 더 말해봤자 자기한테 이득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은 뒤집기다. 아직 프라이팬과 뒤집개를 익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아이는 달걀 뒤집는 일이 쉽지 않다. 달걀이 뒤집개에 붙기도 하고, 잘못하면 달걀이 접히고 원하는 방향으로 뒤집어지지 않는다. 예쁜 달걀프라이를 꿈꾸며 들인 노력은 현실 앞에서 자주 무너진다.
예쁘게 뒤집어보겠다며 뒤집개도 여러 번 바꿔봤다. 스테인리스로 된 것도, 폭이 넓은 실리콘도 써봤지만 결국 처음 쓰던 것으로 돌아갔다. 연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뒤집다가 달걀이 떨어지고 쭈글쭈글해지면 다시 한번 아이의 눈빛에서 실망이 번진다. 그날 아침 운세는 완전 꽝이다.
달걀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나 역시 사소한 일 하나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다는 걸. 예쁘게 깨지든, 내가 실수로 노른자를 터뜨리든, 마지막엔 결국 하얗고 노란 프라이가 된다.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은 경우가 많다.
예전엔 아이의 모습에 나도 예민했다. 뭐 그런 걸로 짜증을 내냐며, 울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었다. 요즘은 아이의 반응에 덜 휘둘리고 굳이 잔소리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맞추기보다 나 자신을 먼저 다스리게 됐다.
나의 하루도 달걀프라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획이 틀어지고 흐트러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루 전체가 망가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하루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떤 마음으로 익혀내는 가다.
달걀은 매일 아침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메시지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엉성해도 오늘을 잘 살아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