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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코끼리를 몰아내는 일

불안과 함께 걷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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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 보건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학교 끝난 뒤 친구들을 데려와 집에서 놀고 방과후 수업에서 도자기까지 잘 만들고 온 아이는 다시 배가 아프다고 했다. 좋아하는 태권도까지 빠지겠다 하니 몸보다는 마음이 지쳐 있는 것 같았다.


"학교 가서 또 배 아프면 어떻게 해?"


평소와 같이 주말을 보내고 맞은 월요일 아침.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또 배가 아플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를 보니 2년 전 일이 떠올랐다. 학교에 즐겁게 다니다가 늦은 가을 갑작스럽게 배 아프다며 조퇴한 뒤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등교 거부는 한 달 넘게 이어졌었다. 물론 당시에는 친구와 공부 문제 같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또 시작인 걸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위로와 공감, 회유와 협박까지 총동원해 겨우 등교시켰다. 등굣길에 친한 친구를 만나자 이내 표정이 밝아지며 아무 일 없다는 듯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때문에 3교시를 낭비했어!"


집에 돌아온 아이가 투덜댔다. 배 아플까 봐 3교시에 보건실에 있었다고, 배 아플까 봐 점심도 안 먹었다 했다. 학교에 억지로 보낸 엄마 탓이라는 투였다.


말이야 방구야. 분노가 차오르는 순간 얼마 전에 읽은 《엄마 반성문》이란 책이 떠올랐다. 선생님이었던 작가는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진심을 꾹꾹 담아 책에 썼다. 작가의 고등학생 아이 둘이 자퇴하고 몇 년 동안 방에만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머지 수업은 엄마 덕분에 잘 들었잖아 하며 웃어넘겼고 "힘들었는데 학교에 간 것도 잘한 일이야"라는 말도 건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날도 상황은 반복되었다. 아이는 다시 아플까 봐 무섭다며 다시 불안해했다. 이번엔 내가 책에서 읽은 내용과 온라인에서 본 글까지 총동원했다.


"'코끼리 생각하지 마' 했더니 어때? 계속 코끼리 생각이 나지? 그것처럼 배 아프면 어쩌지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하고 놀지를 생각해 봐. 학교에 가는 건 최소한의 노력을 배우는 일이야. 오늘 덥다니까 어디 갈 데 없으면 친구들 데리고 우리 집에 와도 좋아."



하교시간에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랑 같이 집으로 가도 되냐고. 아이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에어컨 틀어놔!"


평소 같았으면 "틀어놔 주세요"라고 정정했을 테지만 그냥 "알았어"라고만 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오렌지를 깎아주고, 평소 금지했던 문 장난이나 창문으로 베란다 넘어가기와 같은 행동도 못 본 척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작은 집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온몸으로 즐거움을 느낀 덕분일까. 아이는 점심도 간식도 잘 먹었다며 평소처럼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늘 먹던 양을 먹고, 입을 옷을 고르고, 동생과 장난치고, 친구에게 전화해 약속 잡고 가방 메고 나갔다.




‘코끼리 생각하지 마’


이 말은 사실 아이보다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이었다. 아이가 또 힘들어하면 어쩌지, 오늘도 배가 아프진 않았을까, 학교에서 전화 오면 어쩌지. 애써 외면하려 해도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아이에게 "오늘은 배 안 아팠어?" 묻고 싶었다. 학교에서 힘들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한 질문이 또 아이에게 힘들었던 순간을 상기시킬까 봐 꾹 참았다.


나도 노력했다. 내 머릿속 코끼리를 몰아내기 위해 다른 생각으로 채워 넣었다. 강의 듣고 붓글씨 쓰고 현재에 집중했다. 불안 대신 기대를 떠올리며 내 하루를 채워 넣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를 조용히 흔들던 불안도 조금씩 사라졌다.


불안과 걱정을 마주하되 그것에 내 마음을 다 내어주지는 않기로 했다. 코끼리 말고 내 눈앞에는 다른 동물들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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