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 대신 여유를 배우는 시간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보통은 첫째가 먼저 학교로 출발하고 나는 둘째를 데려다주는데, 이날은 첫째의 준비가 평소보다 늦어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 둘이 나란히 앞서 걷고 나는 뒤를 천천히 따랐다. 분주했던 아침이 무색하게 바람은 시원했고 길은 한산했다. 문득 아이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발걸음을 늦추고 한참 바라봤다.
1학년인 둘째는 며칠 전에 가방끈을 아주 짧게 줄여달라고 했다. 등에 가방이 착 붙게 해달라고. 아이의 바람대로 가방은 등에 딱 붙어 꼭 거북이 등껍질처럼 보였다. 아이는 만족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하게 걸었다. 누나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며 자박자박 속도 내는 발걸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가방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반면 첫째의 가방끈은 느슨하다. 자연스럽게 엉덩이까지 내려온 가방은 슬슬 초등학생의 무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방은 아이의 느긋한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 첫째도 초등학교 입학할 땐 각 잡힌 민트색 가방을 골랐다. 투명한 비닐 안에 반짝이는 비즈가 가득 들어있는, 보기만 해도 “나 이제 초등학생이야!”를 외치는 듯한 가방이었다. 실용성도 없고 금방 싫증 낼까 봐 조금 더 무난한 걸 권했지만 아이는 끝내 민트색 가방을 선택했다.
그러던 아이는 자랐고 취향도 변했다. 3학년이 되자 천으로 된 검정 가방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검정 티셔츠에 검정 바지, 양말까지 블랙으로 맞춘 날에는 뿌듯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방끈은 길어지고 가방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자세도 걸음도 마음가짐도 함께 느슨해지는 듯했다. 알람까지 맞춰가며 정해진 시간에 꼭 나가야 한다던 아이는 이제 알람도 지워버렸다. 준비되는 대로 나가겠다고. 가방끈이 길어진 만큼 마음도 생각도 조금은 유연해진 듯했다.
나 역시 그랬다.
첫아이를 낳았을 땐 뭐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유 시간, 수면시간은 물론 기저귀 간 횟수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아기가 조금만 울어도 무엇이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했다. 잘하고 있는 걸까 매일같이 고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육아서를 들춰봤다. 인터넷 맘카페에 수시로 들어갔고 검색창에 같은 질문을 반복해 넣곤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매 순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실수하고 놓치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하루쯤 목욕을 빼먹는다고, 이유식을 순서대로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이제는 안다.
보지 않아도 아는 일들이 생겼고 알면서도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육아는 점점 유연해졌다. 마치 가방끈처럼.
처음엔 등에 바짝 붙인 채 무겁게 짊어졌던 책임감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어깨 위의 무게는 여전하지만 무게를 견디는 방식이 달라졌다. 정답을 찾아 헤매던 마음은 이제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방끈처럼 사람 마음도 느슨해진다. 느슨해졌다고 해서 무너진 건 아니다. 오히려 느슨함이 주는 여유가 생겼다. 틈이 있으면 바람이 통하듯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방끈이 길어진다는 건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