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프다는 말속에 숨은 마음
"엄마 배 아파."
둘째 아이가 아침부터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잠들기 전에도 그러더니 여전히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침이나 콧물처럼 눈에 보이는 증상이라면 약이라도 줄 텐데, 배 아픔은 다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알 수 없어 덜컥 겁부터 난다.
평소처럼 토스트에 잼을 발라 아침을 준비했다. 첫째가 다 먹더니 빵을 하나 더 달라했고, 그 말을 들은 둘째도 "나도!" 하고 외쳤다. "배 아프다며?" 묻자 안 아파졌단다. 걱정스러웠지만 한 장 더 구워주었다.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우유는 먹지 말라고, 아프면 꼭 선생님께 이야기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배 아프면 교실로 올라오라고 했더니 20분 만에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점심과 간식은 어떻게 할지 물으셔서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미역국, 돈가스, 고구마범벅, 생일도넛
오후간식 꽈배기와 요구르트
식단을 살펴보니 전부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완밥'했다는 문자가 왔다. 선생님과 한바탕 웃었다. 둘째 아이는 수영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회를 틈탔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난스럽게 물었다.
"배 아파서 수영하다 나왔다며? 많이 아팠어? 근데 밥은 다 먹었다더라?"
민망했는지 평소에는 "몰라"로 일관하던 아이가 수영 시간엔 뭘 했고 코딩 시간엔 뭘 배웠는지, 다섯 살 시절 기억까지 꺼내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집에서도 아이의 배는 아팠다 안 아팠다를 반복했다. 저녁밥을 앞에 두고는 아팠고 젤리 앞에서는 괜찮아졌다. 도넛 한 조각 남겨놓고는 다시 조금 아파졌고,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또 멀쩡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며칠 뒤,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미쯔 한 봉지를 먹고 우유 한 컵을 마셨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는데 또다시 배가 아프다고 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줄넘기 학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간식 때문일까 싶었지만 문득 첫째 아이의 경험이 떠올랐다. 스트레스로 복통을 호소했던 적이 있었다. 수영도, 줄넘기도 아이를 힘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사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줄넘기 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다고 종종 말했다. 막상 다녀오면 신이 나서 새로 익힌 기술들을 보여주곤 했기에 단순한 투정이라 여겼다. 그런데 배가 아플 정도라면 좀 더 진지하게 들어줘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줄넘기 가기 싫어? 힘들어? 뭐가 제일 힘들어?"
"수업 시작할 때 앞으로 200번, 뒤로 300번 뛰어야 돼."
"힘들면 좀 쉬면 안 돼? 안 뛰면 선생님께 혼나?"
"아니. 선생님은 음악 틀고 그냥 돌아다녀.“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시키니까 해야만 했던 그 시간이 아이에겐 꽤 버거웠던 모양이었다.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 주셨고 학년별로 훈련 강도를 조정해 보겠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1, 2학년 아래는 앞으로 50번, 뒤로 70번 하는 걸로 바뀌었다고 했다. 다음부터는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6학년이랑 똑같이 하는 건 말이 안 되긴 했네.)
배가 아프다던 아이는 밥 한 공기를 비웠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두 그릇을 더 먹었다. 그리고 또 배가 고프다고 했다.
살다 보면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시험을 앞두고 머리가 아프거나 낯선 모임 전엔 괜히 속이 불편해지는.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이유 없이 몸이 무거워지기고 불안한 도전 앞에서는 핑곗거리를 만들고 싶어진다.
어른이 되고서도 여전히 ”배가 아프다“라고 말한다. 마치 수영 수업이 싫은 아이처럼. 젤리와 아이스크림 앞에서 배 아픈 게 사라지듯 우리도 결국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나면 다시 힘을 내게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배 아프다“라는 말은 정말 아픈 건지, 아니면 피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인지. 어쩌면 우리는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르는 척하고 싶을 뿐.
결국엔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다시 힘을 낸다. 아이의 꾀병 아닌 꾀병을 웃어넘길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