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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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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첫째가 학교 가는 걸 조금씩 힘들어한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회복하는 데 한 달 남짓 걸렸고, 좋아진 뒤로는 거짓말처럼 매일 웃으며 등교했다. 다시 비슷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쓰였다.


며칠 전, 학교에 있던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선생님이 집에 가도 괜찮다 하셨지만 아이는 학교에 있고 싶기도 하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병이 난 건 아닌 듯했다. 설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학교 가는 걸 두려워했다. 배 아프면 어떻게 하냐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침마다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빨리 나가야 한다고 재촉하던 아이였다. 그날은 휴대폰을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문자 알림음만 계속 울렸다. 쉬지 않고 재잘거리던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이 없었다.


마침 남편이 병원에 들를 일이 있어 함께 나섰다. 아이는 내 옆에서 걷다가 발걸음을 늦추더니 뒤따라오던 아빠 옆으로 갔다. 조언이 필요할 때 아이는 늘 아빠를 찾는다. 뒤에서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남편이 걸음을 맞추며 대답했다.


“싫을 수도 있지. 그런데 싫은 것도 모두 하며 살아. 그런데 도망가지는 마. 한 번 도망가기 시작하면 계속 도망가게 돼. 도망가고 싶을 때는 이렇게 외쳐. 나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남편과 헤어지고 나와 아이는 나란히 길을 건넜다.




어제는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외출하고 돌아와 주차를 막 끝냈을 때였다. 선생님은 요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늘 밝고 활발하던 아이가 갑자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니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데자뷰인가. 2년 전에도 ‘똑같이’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나도 처음이라 하루 종일 불안했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가 스스로 회복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덜 흔들렸다. 시간이 흐르면 이 시기도 지나갈 수 있다는 걸 기억했다.


선생님은 최근 수업 시간마다 아이를 더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도 자주 나누었다고 했다. 조용히 앉아 학습하는 시간을 특히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학교는 긴장감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곳이라 아이에게 말씀해 주셨단다.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에는 표정이 밝아지니 당분간은 그 시간을 조금 늘려 보겠다고도 하셨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아이는 앉아 배우는 시간보다 떠들고 돌아다니며 활동하고 장난치고 싶다 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나도 밥도 빨래도 안 하고 싶다.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너는 학생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도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다가 금세 표정을 풀었다. 내일은 미술이랑 음악이랑 창체 시간이 있어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도망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 아이만의 몫이 아니다. 외면하지 않고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는 선생님, 옆에서 든든하게 조언해 주는 아빠,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엄마. 아이가 배 아프다고 울며 전화했던 날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주던 친구들까지. 도망가지 않고 곁에서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시기도 잘 지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되새기려 한다.


나는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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