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감수해야 얻는 선물 같은 순간
아이들 공부방 정리하다 책상 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들이 긍정 확언을 쓰듯 첫째 아이도 문득 떠오른 문구들을 흰 종에서 써서 책상 앞 벽면에 붙여놓곤 한다. 몇 달째 바꾸지 않고 있던 자리에 어느새 새로운 문장이 덧붙여져 있었다.
여름은 더우면 하늘이 맑고,
겨울은 추우면 하늘이 맑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한참을 서서 바라봤다.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쓴 건지 궁금했다. ‘맑은 하늘은 불편한 날에 주어지는 선물 같다’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렇다. 여름에는 바람 불고 구름 드리운 날이 덜 덥다. 하늘이 쨍하게 맑은 날이면 햇볕이 매섭게 내리쬐어 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겨울도 다르지 않다. 미세먼지 잔뜩 낀 날은 기온이 비교적 온화하지만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칼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감수해야만 제대로 된 맑음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의 삶이 온통 맑은 하늘 같아 부러울 때면 그 사람이 겪었을 뜨거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을 상상하게 된다. 눈부신 맑음은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면에는 반드시 불편함과 고단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알록달록한 색깔로 휘갈겨 쓴 글씨를 보고 있자니 2018년 여름이 떠올랐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둘째 아이를 품에 안았던 시간. 막달에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무더위와 싸우며 하루하루 버텼다. 어린 첫째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려 에어컨을 제대로 틀지 못했다. 무거운 배 때문에 자세를 바꿀 때마다 진땀이 났다.
힘겹고 고단했지만, 그 여름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곁에 있다. 불편함 속에서 얻은 가장 빛나는 맑음이었다.
출산 이후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원래 땀이 거의 나지 않는 체질이었다. 회사 다닐 때 잠시 스쿼시 배운 적이 있었다. 아무리 뛰어도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아 강사님이 운동을 대충 한다고 오해할 정도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큼 움직였는데도 옷은 뽀송했다.
그러던 내가 둘째 낳고 난 뒤부터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렀다. 여름이면 잠깐 밖에 나갔다 와도 옷이 흠뻑 젖는다. 아침에 아이들 밥 차려주고 학교 준비 챙기는 사이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하다.
덥다 춥다 투덜대면서도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언제나 맑다. 아이가 웃으며 달려와 안길 때면 온몸에 흐르는 땀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한겨울 차가운 놀이터에서도 아이가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추위쯤은 견딜 만하다.
불편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맑음. 삶도 그런가 보다. 편안함만 바랐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순간들이 있다.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비로소 선물처럼 쨍한 하늘을 마주하는 것처럼 삶의 소중한 맑음도 그 과정을 지나야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아침에 첫째에게 문장을 무슨 의미로 쓴 거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홱 돌리며 “물어보지 마” 하고 정색했다. 기분 좋을 때 물어볼걸.
삼춘기인가. 앞으로 맞이할 사춘기의 더위와 추위는 또 어떻게 견뎌야 맑음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