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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지 May 22. 2020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서 답하다_김형갑 공보의 인터뷰

김형갑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대구 현장 파견을 자원해 공보의 중 최장 기간인 56일 연속 근무 후, 현재는 세종시로 파견지를 옮겨 평상 업무 및 선별진료 업무를 하고 있다.


필자는 올해 2월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대구 현장 지원을 고민하던 중, 공보의 협회를 통해 필요 물품 등의 니즈를 파악하여 효과적인 지원을 실행할 수 있었다. 이때 공보의협회장으로 대구에 파견 중이었던 김형갑 회장과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있었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업무를 수행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서 여전히 선별 진료를 수행하고, 협회장으로서, 또 인생의 목표를 두고 노력하는 한 개인으로서 충실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 김형갑입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공중보건의사로 지원하여 재직을 시작하여, 현재 3년차에 이르고 있습니다.



2. 대구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어떤 역할들을 수행했으며, 하루 일상은 어떻게 구성됐나요?

저는 2월 26일 대구에서 첫 파견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협의회 일로 대구의 현지 사정을 2월 20일부터 전해들으며, 협의회장으로서 각종 현안을 해결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와보니 멀리서 듣고 판단했던 것과 현장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도로에 차 한 대 없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리며, 가장 번화한 곳 중 한 곳인 동성로에도 단 한 명의 사람조차 없었던 충격적인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모두가 정말 열심히 활동하여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는 시민분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또 다시 퍼지면 어떻게하나 걱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구에 있었을 때에는 파견 초기, 중기, 후기에 따라 일상이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초기에는 정말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낮에는 선별진료 업무를 수행하고 밤에는 각종 공중보건의사 관련 현안들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에는 확진자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현장 상황에 따른 판단이 매우 중요하고 한 명이라도 덜 퍼진상태에서 더 많은 감염(의심)자를 격리시키기 위하여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하루에 3-5시간만 자는 일상이 4주 정도 반복됐던 것 같습니다. 차차 시간이 가면서 상황은 많이 나아졌는데, 이때에는 방역 전략 자체가 많이 변경되어 감염시 위험한 '고위험군'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많은 시간을 썼었습니다.


파견 근무 중 작성한 선별진료소 운영 도표

 


3.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일상을 살고 있나요? 스스로 세우는 원칙이나 기준들이 있다면?

의사 개인의 삶으로는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더 구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행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하여 직위에 상관없이 머리를 맞대고 많은 방법을 찾아나갔었습니다. 동시에 협의회 회장으로서는 회원의 건강권 수호와 적절한 위험에 대한 보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좋은 결론을 많이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하여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현안들에 대해 읽기만 해도 따라가기 힘든 상황 속에서 많은 의사결정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할 수 있는 공부는 진행하고, 그 속에서 배운 걸 계속해서 활용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사실 그 정도 여유가 있지는 못했습니다. 온라인 강의의 경우 출석체크 정도만 해 둔후 파견을 마치고 나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곳에서는 기상부터 취침에 이르기까지 종일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유를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주위 사람들과 제한적으로 식사를 시작할 정도였으니, 초기 4주 동안은 선별진료, 지침 제작, 강의 동영상 제작 등 모든 에너지를 방역과 공중보건의사 회원의 권익 수호에 쏟았던 것 같습니다.


대구 현장 파견 중 제작한 지침 및 강의 동영상

사례1) Level D 착, 탈의 임시배포본 제작 (일부 페이지만 첨부)

사례 2) 비인두 검체 채취 시연 영상 제작

https://youtu.be/DvzFR8tCszE


사례 3) 공중보건의사 선별진료소 운영안내 지침 (일부 페이지만 첨부)



4. 직접 출연 및 시연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느껴지는 제작물들입니다. 왜 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사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진로를 선택한 것은 물리학과 였으나, 서울대로의 진학을 2번 이상 계속해서 실패해서 마지막에 기회가 왔을 때 서울대와 의대 중 의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희랍(그리스)철학이나 메타과학, 과학철학에 관심이 많아 arche를 탐구했던 희랍 철학자처럼 근원적 원질 그 자체를 쫓는 것이나, 사고·인지의 구조에 관한 관심이 많았는데, 대학 진학에 성공했을즈음 해서는 이미 나이도 너무 많았고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바라볼 수 있는 의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자아, 인지과정, 인지의 구조 등에 관심이 많은데 의과대학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연구 쪽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 같습니다.


5. 그렇다면 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관심이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굳이 찾으라면 첫 전공으로 선택했던 물리학에서의 많은 모습들이 플라톤주의에 가깝고 하나의 방정식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 측면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입장이나, 4대힘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에 해당합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물리적 실체로보기보다는 철학적으로 사유하면서 접근한 게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중간에는 언어 자체에도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비트겐슈타인에 잠시 빠졌던 적도 있구요. 그러다 보니 인식이나 인지로 최종적인 관점이 이동해간 것 같습니다.



6. 의사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시작한지 3년차인데, 특히 광양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공보의로서의 경험이 특별할 것 같네요.

네, 많은 의사들이 인턴, 전공의를 통해서 첫 의업을 시작하는 것에 비하여 저는 1차진료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지소에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보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보건대학원, 경영대학원으로의 진학을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1차진료를 겪는 방법은 다양할 텐데, 그 중 시골에서 직접 도농 복합지, 농어촌의 의료이용행동이나 의료에 대한 관념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은 큰 메리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의과대학 재학시절에서부터 내과 중 감염분과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코로나19가 발생하던 1월 초부터 눈 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1월 말부터 광양에서 선별진료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일찍 시작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많이 준비된 상태에서 대구로 도착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장에 오고나서는 또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 책상에서 방역의 전체적인 진행을 보는 것과 시군구 단위, 시도 단위에서 직접 방역을 하면서 현장을 조율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령, 시군구 단위에서의 방역 체계는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하기에 단일성을 가지고 접근해야하는 측면이 컸었는데, 대구에서는 구 뿐만 아니라 시 전체의 상황과 함께 방향성을 맞춰나가야한다는 것이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전 광양시 역시 전라남도라는 체계 속에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좀 더 좁게 분포하는 광역시 단위가 좀 더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7. 의학 외에도 경제, 경영, 교육공학 등 여러 전공을 독학사 과정 혹은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네요. 이러한 길을 택하게 된 전공별 이유 혹은 스토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학습들은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도움이 되나요?

원래 관심이 있는 분야가 지적 능력의 구조, 초지식의 패턴 연구 등이다 보니 다학제는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물리·화학·생물학·지구과학을 공통으로 엮고 있는 메타과학 및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은 대학교를 졸업하며 학제 간 공통 논리구조, 인간의 인지 패턴 연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제가 친근하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과목부터 시작하여 학습을 시작하였는데 경제·경영·교육학으로 시작하여 행정·보건 등을 거쳐 정치학 등으로 계속해서 이어져나가고 있습니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사소한 이유로부터 시작된 것도 많습니다. 가령 경제학은 우리가 경제와 떨어져 살아갈 수 없고, 경제학 관련 신문기사 등을 굉장히 많이 보는데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경제개발/성장이란 무엇일까 궁금한 관점에서 시작하여 학부로 시작하게 되었고, 교육공학은 인제대학교가 의학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배운 교육과정과 교육법이 과연 교육공학·교육학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어떤 위치에 있을지 궁금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영학은 크게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삶과 관련된 지식과 조직과 관련된 경험이 구체화된 학문이라 생각해서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학부에 거쳐 석사(MBA)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학을 고른 것은 좀 기묘할 수도 있는 이유가 있는데, 이렇게 배운 과정들이 테크니컬하고 실용적인 느낌은 있지만 그것보다 좀 더 사상적이면서도 철학에 가깝지 않은 학문을 접해보고 싶었고 정치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습들은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의과대학에서 수술방에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배워왔던 지식, 책을 통해 쌓아온 각종 바이러스·세균과 관련된 일반 담론 등은 코로나19와 관련한 방역대책을 즉시 이해하고 현장에 응용하기 위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해주었고, 이러한 원리와 사고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경영학적 지식을 통하여 자원을 모으고 인력을 배정받아 조직화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드라이브쓰루와 같은 선별진료소는 보통 1단계(신원확인-접수-역학조사)-2단계(검체채취-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보통은 1:1 방식으로 인력이 배분되지만 현장에서 역학조사가 필요하면 지연시간이 있으므로 대기행렬이론과 같은 경영학적 지식을 통하여 2:1-3:1 방식을 어떻게 도입할지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물자배분이 조금씩 지연된 부분이 있는데, 이런 물류 부분에 있어서 경영학적 지원이 많았다면 같은 자원으로도 현장이 더 풍족하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대구에서 오랜 기간 머물며 마지막에는 새로 파견되어 오는 인원들의 교육훈련 등을 맡거나, 정부 주관의 교육에 강의자료를 배포하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하여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이 과정에 있어서도 교육공학적 지식을 많이 활용하여 학습자의 수행능력향상을 최적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책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지식을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8. 김형갑은 어떤 꿈을 꾸는 사람인가요? 예전의 꿈은, 그리고 앞으로의 꿈은?

제 인생은 어떻게 보면 한 가지 목적에 강하게 지향된(oriented) 면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어떻게,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인지구조가 궁금하였고 이 인지로 표상하고 추론하고 있는 많은 지식들이 과연 자연계와 일치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일치할 수 있는지, 뇌의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패턴인식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등의 질문을 계속 던졌습니다. 인지과학, 의학, 뇌과학, 심리학, 통계학 등과 연관이 있겠지만 아직 학문으로 완전히 정립되지도 않고 질문을 던질 수 있기만 한 부분이기에 제가 쫓아가고 있는 길을 곁에서 볼 때 난잡하게 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런 인간 종의 인지구조와 그 한계 및 보완에 대하여 지속해서 궁구해나갈 것 같습니다. 예전의 꿈과 차이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에는 현실을 무시하고 그저 달려가고자 했다면,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사회 속에서 건강한 개인으로서 잘 활동하면서도 할 수 있는 영역을 잘 구축해 나가도록 노력하며 꿈을 쫓아가는 것이 달라진 점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붙이고 싶은 불길이 그대의 가슴 속에 먼저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 키케로


그의 메신저 프로필 속 한 문장. 하루하루 치열하게 본분을 다하며 동시에 꿈을 찾아 부지런히 걷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걸음의 경로가 어떻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 그의 오늘이 치열한만큼 걸어나갈 미래가 기대된다.  


사진 및 자료 제공: 김형갑

인터뷰, 정리 : 이미지

본 건은 비대면 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 코로나 최전선의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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