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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기 Jul 16. 2021

[PAUSE] 금요일 밤에는 청소를 해요


1cm  안되게 열어둔 창틈을 직선으로 뚫고 들어온 햇살이 벽을 일직선으로 타고 내려와 잠든  위를 지나간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바깥은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힌다. 매일 커튼을 걷고 해를 마주 보며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겠다는 계획을 그만뒀다. 어젯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탓에, 커튼 속에 숨어 잠이 알아서 떠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기로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그러나 잠은 하루 종일 머물러 있었고 결국 업무를 목표만큼 끝내못한  노트북을 덮었다. 하지만 칼같이 지켜오고 있는 금요일의 작은 의식은 지체없이 시작했다. 바로 청소다.


청소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청소도 노력이 아닌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청소를 잘하는 사람은 ‘정리를 잘하는 사람’과 ‘후비고 파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다. 아무렇지 않게 곰팡이를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정체 모를 어떤 것을 박박 긁어내는 것은 그나마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물건을 정리하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구석이 반짝이는 것보다 생필품들이 전시된 것처럼 얌전히 조화롭게 놓여 있는 것이 더 깔끔해 보이는 법인데, 타고나길 그런 재주가 없다. 내 눈에는 전혀 거슬리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바르게 제 자리에 갖다 놔야 할 것을 잘도 찾아낸다. 지금도 눈앞에 치실이 세탁기 앞에 떨어져 있는데, 아마 엄마가 보면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지’ 하면서 바로 어딘가로 올려놨을 것 같다. 또 엄마는 ‘먼지가 밟힌다’고 표현하던데, 30 평생 집 안에서 발 밑에 뭔가가 느껴져서 치운 건 레고나 압정 같이 밟는 순간 피를 보는 것들 뿐이다. 다년간의 자취로 인이 박혀 어느 정도 치우고는 살고 있지만,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면 좁은 집은 어느새 어질러져 있다. 특히 평일에 퇴근하고 나면 만사가 귀찮아 여기저기 던져놓는 모양인지, 목요일 밤 쯤되면 방 상태가 나조차도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청소를 좋아한다. 사무실에 출근을 할 때도 일부러 금요일에는 약속도 잡지 않고 청소를 하려고 집에 곧장 오고, 집 가는 길에 청소할 생각에 들 뜰 정도다. 하지만 집 청소하러 간다는 걸 남들에게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워 비밀로 하고 있다. 여기에 처음 털어놓는 셈이다. 직장 선배들이 그 나이에 금요일 밤에 집에 가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하하 웃어넘긴다. 이미 내가 청소를 잘 못한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데다, 재능 있는 청소부들에게는 핀잔을 들을 수준의 청소라 꿋꿋이 비밀로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코로나 시국으로 집에 가는 게 당연시되고 책임감 있는 어른 취급을 받게 된 게, 이런 면에서는 조금 편하다.


또 청소는 내 심리적 방어벽이기도 하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 나는 침대 옆에 떨어진 휴지를 주으러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어질러진 방이 결국 내 심리를 보여준다는 것을,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더러운 사람이야, 청소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그래서 쓸모없다고 절망하는 악순환이었다.


그러나 결국 제 발로 병원으로 향했고, 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조금 좋아지던 찰나, 나는 약을 가지고 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세운 콜카타의 보육원에서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며 갑자기 청소에 눈을 떴다. 그곳에서는 보통 30명, 많게는 70명도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아침 7시까지 모여 다 같이 간단하게 밥을 먹고 기도를 한 후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흩어지는데, 가장 가까운 보육원인 시슈바반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그 모임 장소의 아침 청소 담당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떠나며 썰물처럼 빠지고 나면, 인도인 직원인 릴리 아줌마가 나타나 청소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나이를 정확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다리는 세월에 근육이 빠져 조금 O자를 그리고 있는 노파인 릴리 아줌마는 목소리와 손아귀에만은 힘이 넘쳤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엄격하게 우리의 청소를 감독했는데, 양동이에 물을 길어와 세제를 풀고 걸레를 담근 후,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물기를 짜내야 걸레를 쓸 수 있었다. 풋팃다운, 스퀴즈, 스퀴즈 모어, 굳 걸. 걸레를 다 쓰고 나면 여러 양동이를 거쳐 걸레가 깨끗해질 때까지 빨고 또 짜야했다. 또 그곳에는 청소기 따위는 없고 내 키만한 짚단을 엮은 싸리비만이 있어서, 전신을 휘휘 움직여 쓸어내야 했다. 그렇게 바닥을 쓸어낸 후 매캐하고 커다란 먼지가 쌓인 창틀까지 빠짐없이 닦고, 무거운 나무 테이블도 힘을 써서 옮겼다. 이왕 왔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하던 단순한 행위들을 통해 나날이 몸에 생활근육이 붙고, 우울들은 서서히 잊히는 것이 느껴졌다. 때로는 몸이 정신을 이긴다. 내 손으로 깨끗해진 공간을 바라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단순하고 맑아진다. 청소의 선순환이다.


돌아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적응하느라 애를 먹으며 금요일을 멍하니 보내다 그 아침들이 생각나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래 금요일 밤마다, 나의 신성한 의식은 반복된다. 한 주 동안 쌓인 쓰레기들을 모아 분리수거한 것들을 분류하고, 어질러져 있던 물건을 비로소 제자리에 - 남들보다 ‘제 자리’라고 보는 영역이 넓고 다양한 것 같긴 하지만 - 갖다 놓는다. 바닥을 닦으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잊힌다. 서둘러 저녁 먹고 그릇도 싹 씻고, 냉장고를 탈탈 털어 상한 음식물까지 정리해 현관 앞에 가득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 마음의 노폐물까지 같이 싹 갖다 버린 것 같다. 날이 좋으면 빨랫감을 분류해 세탁기도 돌린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며 곰팡이를 박박 닦아내고, 샤워를 하고 밖에 나와 깔끔해진 방안의 침대에 누우면, 평일 5일간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이틀의 자유가 남았다. 만세!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지금 내 방은 청소에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와도 크게 지적할 것 같지는 않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책들이 조금 거슬릴까? 다른 곳은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하다. 마음은? 내 마음도 괜찮다. 무람하지만 엉덩이가 조금 들썩거려진다. 잘했어, 나야. 또 한 주를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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