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 대한 관심
남자는 반드시 친구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건 대체로 결혼하고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와의 시간'을 위해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서 속을 까맣게 태운다. 회식은 회식대로 하고, 친구들 약속이라고 나가면 저녁을 함께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다. 이번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는데, 단체 관광객들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었다. 친구분들이 함께 온 경우가 많아 보였는데, 부부가 함께 온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들 남편은 어디에다 떼어놓고 이 먼 길을 온 것일까?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남편과,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 부인으로 이뤄진 한 부부를 알고 있다. 남편이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텔레비전에서 축구 채널을 켜주면 남편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고 말하는 부인 분은 축구를 하나도 몰랐다. 어떤 팀이 있는지, 어떤 선수가 유명한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는 부인 분은 우리 부부가 여행 떠난다는 말에 너무나 부러워했다. 남편 분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분명히 평생 함께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는데, 서로에게 관심을 많이 두지 않고 서로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1.
우리 부부의 경우 서로의 관심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사귀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했던 일은 각자의 친구를 소개하는 일이었다.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대화 주제를 급격히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
그리고 특히 좋았던 것은 서로 유학했던 나라를 함께 여행한 일이었다. 일본, 스페인, 대만을 함께 다녀왔는데, 살았던 곳과 공부했던 곳을 손잡고 다니면서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의 친구와 만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3.
나는 부인 덕분에 소설에 눈을 떴다. 그녀는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폴 오스터의 소설로 소설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브런치의 다른 매거진에 매번 읽은 글을 공유하고 있는데,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의 상상에 범위는 넓어졌고, 훨씬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구체적이고 넓은 상상 능력은 아직은 한국에서는 낯선 프리랜서와 디지털 노마드로의 삶을 지향하는 나에게 '도전'이라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매일 한 편씩 발행하는 브런치 글도 더욱 풍부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4.
그녀는 놀랍게도 나와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몇 명이나 남편/남자친구 혹은 부인/여자친구가 개발자라고 함께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수 있을까? 그런 심리적인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나의 일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파이썬을 함께 공부했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간단한 사이트를 만들었다. 부인은 이제 간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자와도 이야기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5.
그 외에도 크레마라는 전자책을 함께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한 번도 무협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던 부인은 내가 중고등학교 때 즐겨 읽었고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다던 비뢰도를 전자책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