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Apr 16. 2016

[우먼 인 러브] 자연체

나에게 주어진 이름표를 다 떼어내고

나에게는 내 이름 석자 이외에도 나를 묘사하는 수 많은 수식어들이 있다. 나는 사람이고, 여자이며, 회사원이고, 누군가의 딸이자 언니이고 부인이자 며느리며 20대 중반의 청년이기도 하다. 각 수식어는 내가 속한 작은 사회 속의 나의 역할이기도 하다. 각 역할 속에는 딸이기 때문에, 첫째이기 때문에, 유부녀이기 때문에, 며느리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수 많은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작게는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 회사에서 우리는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으며 살아간다. 아이에게 부여되는 많은 역할은 부모를 통해서 일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너는 여자니까 이래야 해, 딸이니까 이래야 해라는 말로 나를 규정짓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학교에서 학생에게, 회사에서 사원에게 강요하는 역할을 쉬이 참지 못했던 것도 같다. (여담이지만, 어제 엄마한테 우리 내년에 칠레 가려구! 했는데 그래? 좋네! 젊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와! 너희 둘은 어딜가나 잘 살거야~ 그나저나 너희 아빠 기도빨이 정말 좋나보다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드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더니 호호 하는걸 보고 우리 엄마구나 싶었다)


가장 최근에 나에게 부여된 꼬리표인 '며느리'를 떠올려 보자. 단어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는 건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역할과 기대가 많기 때문이겠지. 일반론적으로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고(이건 어른이니 당연하다), 행여 남편이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의 한 번 쯤 인사 차 전화를 드려야 하며, 설령 남편이나 시누이가 평생 해본 적 없다 해도 시부모님의 첫 생신상을 차려드려야 하며, 매 해 시댁의 김장을 도우러 가야하고, 제사상을 모셔야 한다. 처음엔 정말 아무 것도 몰라서 하지 않았고, '며느리'에게 부여된 수 많은 사회적 기대를 알고난 후에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운 좋게도 나는 나를 '며느리'도 '딸'도 아닌 '아들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해주시는 시부모님을 만난 덕에 그 어떤 역할도 강요받지 않았다. 요리를 못하고, 잠이 많고, 속이 편해 아무데서나 잘 자고,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다. 나를 '며느리'라는 단어 대신 이름 석자로 불러주셨다. 우리 사이에 역할과 기대를 지우니 관계가 한결 편해졌다.


나에게 주어진 이름표를 다 떼어내고 남은 벌거벗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체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같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별, 출신 대학, 회사, 직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5.11.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