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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Apr 22. 2016

[우먼 인 러브]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마음의 소리

회사를 그만두고 완벽히 혼자가 되었을 때, 더 이상 만원 지하철에 몸을 비틀며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아닌 오전 아홉시에 방문한 은행에서 번호표도 없이 창구로 직행하는 여유로움을 맛보았고, 스타벅스가 이리도 넓고 조용한 곳이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휴가 일수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여행도 다녀왔다. 행복했다.

행복이 계속 되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해졌다. 불안의 근원을 알 수 없어서 더더욱. 고민이 시작됐다. 뭘까. 왤까.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던가?

그렇게 내 안에 물음표가 가득해지자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학원을 다닌지 하루만에 자소서를 고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도 나는 많은 “무언가”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홉시 반 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학원에서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베트남에서 수주한 사업의 기획서를 작성했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 공부를 했으며 한 주에 세 번씩 꼬박꼬박 요가 수업을 갔다. 토요일 오전에는 늘 그래왔듯 스터디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고,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겠다고 느꼈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처음이자 유일한 선택지는 놀랍게도 “회사”였다. 대기업이 아닌 관심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는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 주 금요일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다. 토요일 스터디에 가서 한 주 근황을 나누면서 관심 가는 서비스가 있어 면접을 보고 왔다고 하자 한 팀원이 “왜 그 새를 못 참아요?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내실을 쌓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좀 마음이 편해져.”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았다. 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잘하고 있어.” 그 한 마디를 듣지 못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느꼈구나.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힘들지만 잘 하고 있어. 적어도 열심히 무언가 하고 있잖아.” 라고 느낄 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그리고 회사에서는 상사와 직장 동료들이 고생했어, 잘했어, 더 잘 할 수 있잖아? 라며 격려 때로는 질책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할 요인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졌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타인이 잘 했다고 해서 하는 일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잘 한다고 하니 잘 하는줄 알았다.

조금 더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자. 내가 가장 집중해서 잘 할 수 있었던 일의 동기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단순하다. 재미있으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영어 공부를 했고, 피아노를 쳤으며, 노래를 부르고, 글을 썼다. 하다보니 잘 하게 되자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었고, 그것이 이차적인 동기부여가 되어 더욱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에 의한 동기부여가 아이의 그것이라면 나는 평생 아이이고 싶다.

본래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 타인의 눈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행동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공부에 백을 쏟고, 하기 싫은 공부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훌쩍 떠났다. 그래서 더더욱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하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 속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은 익숙치 않아 불편하지만, 삶의 중심을 내 안으로 옮겨와 마음을 단단히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믿는다. 지금의 흔들림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고민하고, 표현하리라.

다짐한다. 조금 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성적이나 인사고과 같이 타인이 세운 평가 잣대에 나를 맡기지 않기로. 나 자신과 항상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내 사람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자. 그런 날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문득 뒤 돌아 보면 그 곳에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내가 있기를 바라며.


2015.07.03


아래는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글.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집과 결별하고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학교를 마치고 교사가 되었으나 한 달도 안 돼 그만두었을 때 사람들은 미친 것 아니냐고 했다. 불교 잡지사를 다니다가 반 년도 못 채우고 퇴사했을 때 그들은 '왜?'라고 물었다. 클래식 음악 카페를 열었다가 석 달 만에 문을 닫았을 때 사람들은 그새 망한 것이냐며 의아해했다. 거리에서 솜사탕 장사를 시작하자 그들은 '정말?' 하고 눈을 의심하다가 한 계절 만에 접자 뒤에서 웃었다.

가을에 출판사에 취직했으나 봄에 퇴사하자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에서의 생존을 못 견디고 산 중턱의 버려진 집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나에 대해 포기했다. 산에서의 생존도 한계에 부딪쳐 여의도의 회사에 다니자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렸다. 어느 날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 원서를 읽고 그 책을 번역하겠다고 회사에 사표를 내자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만류했다.

불법체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뉴욕으로 떠나자 '꼭 그래야만 하는가?' 하고 사람들은 질문했다. 두 달 만에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인도의 명상센터로 가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귀포로 이사하자 사람들은 계절마다 놀러 오면서도 외롭겠다고 했다. 외로운 것은 그들이었다. 두 해 만에 서울로 오자 그 좋은 곳을 왜 떠났느냐고 아쉬워했다.

인도에만 자꾸 가자 사람들은 유럽에도 가고 러시아에도 가라고 조언했다.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원고를 완성하자 세 군데 출판사에서 '시 읽는 독자가 적다'며 출간을 거절했다. 인도를 열 번 여행하고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썼을 때 '인도 기행문을 읽을 독자는 거의 없다'며 출판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을 번역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또다시 거절당했다.

방황한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런 목적지가 있다'고 마르틴 부버는 말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항상 선택 앞에 놓인다. 한 가지 길의 선택은 가지 않은 많은 길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UCLA 인류학과 학생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에게 멕시코의 야키족 인디언 돈 후앙은 말한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한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담겨 있다면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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